격통지 메일을 확인하던 순간이 여전히 생생하다.
졸업과 취업을 동시에 준비하며 정신 없던 2015년 11월 말의 어느 날. 평소와 같은 일과를 끝내고 부쩍 한기를 머금은 공기를 뒤로 한 채 총총 걸음으로 방에 들어왔다. 밖에서 들여온 긴장을 날숨으로 후 뱉어내고 옷가지를 정리하려는 때,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최종면접 전형 결과 발표. 메일 확인 바랍니다’
창으로 쏟아지는 주홍빛 노을 속에서 외투도 그대로 입은 채 휴대폰 액정을 바라보며, 사실 난 별 감흥이 없었다. 아니 무덤덤도 감흥이라면 감흥이려나. 정말 가고 싶던 회사는 이미 떨어졌고, 진지하게 고민하던 회사가 아니였을 뿐더러, 원래 감정이 한 박자 늦은 아이이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별다른 긴장이나 망설임 없이 단번에 메일을 열었고, 액정에는 담백한 파란색 테두리에 회사의 일원이 된 것을 축하한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음, 함정인가?’
무언가 급작스럽게 닥쳐온 비현실감에 약 10초간 멍하니 액정만 바라보다, 일단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엄마, 나 된 거 같아”
말하는 내 목소리가 어쩜 그리도 어색한지. 부모님의 기쁨과 축하로 가득한 전화를 끊고 나서야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아, 이제 됐구나!’
신기했다.
흑백이던 세상이 채색되고, 무성이던 세상의 지저귐이 살아나고, 잠궈두었던 감각이 서서히 돌아오는 느낌.
그제서야 문득 깨달았다.
차디찬 방바닥에 멍하니 앉은 나를 감싸주고 있던 그 주홍빛 노을의 따스한 온기를.
최종 합격하여 일원이 된 회사는 우리나라에서 꽤 유명한 그룹의 건설 계열사였다.
‘기계공학과 출신인데 왜 건설업으로 오셨어요?’
면접 때도, 이후 실무에서도 참 많이도 들은 질문이다. 이에 대외적으로는 ‘아버지가 건설업에 종사 중이셔서, 사업 스케일과 주기가 큰 일을 하고 싶어서’라는 답을 해왔지만, 사실은 별 생각이 없었다. 그룹의 여러 계열사 중 기계공학과가 중심인 곳이 없었고, 뭐라도 하나는 지원해야겠으니 그나마 유관해 보이는 곳에 그냥 넣어본 것이었다.
그런데 인간이란 참 간사한 것이, 최종 면접을 준비하면서도 ‘버리는 카드’였던 회사가 막상 붙고 나니 가야 할 이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에 와서도 잘 모르겠다. 건설업이 원래 내 흥미에 맞았지만 몰랐던 건지, 합격이 됐기 때문에 좋아진 건지.
하지만 그렇게 합격한 이후에야 그 회사의 일원인 된 나의 모습을 그려보기 시작했고, 그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당시 기계공학과에서 ‘잘 갔다!’라고 여겨지는 업계는 주로 H그룹을 필두로 한 자동차 완성차, 부품 회사였다. 대학생활 동안 활동했던 자작차 동아리의 영향도 있어 나 또한 자동차 업계를 가고 싶었고, 그 방면으로 준비와 지원을 집중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는 분위기에 휩쓸린 결정에 가까웠다. 평범한 루트에 올라 평범한 일상에서, 평범한 생각을 해온 취준생 중 자신의 진로에 관한 진중하고 치열한 고민을 거친 이가 얼마나 될까? 안타까운 사실이다.
또한 취준생은 보통 취업시장에 있어 몇몇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운칠기삼의 필터링을 거쳐 선택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다. 당연하게도 결과는 나의 의지와 다르게 흘러갔고, 마치 서스펜션이 나간 차를 타고 덜컹덜컹 오프로드를 주행하듯 몇 번의 합격과 몇 번의 고배를 더 마셨다.
그렇게 끝이 없을 것 같던 하반기 공채 시즌이 막바지에 달하고, 다행히 자동차 업계의 유망한 부품 제조 회사와 건설 회사가 하나씩 남았다.
의도치 않게 입장이 바뀌었다. 제조업인가 건설업인가, 선택의 기로에 섰다.
그간 준비해온 바나 흥미를 생각하면 당연히 자동차 부품 제조업이었지만, 선택을 앞에 두고 문득 찝찝함이 차올랐다. 찝찝함은 점차 색을 더해 곧 의문으로 이어졌다.
‘이게 맞는건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정말 이것인가’
상식적인 수순이라면 진작에 충분히 곱씹어 보고 지원할 회사 선정에 쓰였어야 할 질문이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당장 급한 일부터라는 핑계였지만 사실 어떻게 고민해야 할지를 몰랐고, 현실감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제조업과 건설업 두 가지의 옵션이 수중에 들어오고 나서야 비로소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나름 치열했던 그때의 사고회로를 잠깐 들여다보자.
먼저 제조업과 건설업의 업계 특성부터 가늠해보았다.
일반적으로 제조업의 상품 기획은 잠재 수요층의 니즈 분석부터 시작 된다.
여러 통계 자료와 업계의 유행 및 분위기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설정하고, 여기에 각 회사의 기술력과 이미지를 입혀 구현한다. 그렇게 만든 상품을 카테고리 별로 진열해두고 광고를 통해 소비자에게 알린다.
‘너희 이거 필요하지 않아? 우리가 이렇게 이쁘게 만들어봤는데, 다른 데랑은 다를테니 와서 한번 봐봐’
자동차 부품과 같이 커스터마이징이 중요한 제조업은 다소 결이 다르지만, 거시적 관점에서의 접근이니 일단 그렇다 치자.
반면 건설업은 수요층이 보다 명확하다. ‘발주처’라는 형태를 띈 이 수요층은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특정 건물 혹은 공장의 형태로 뚜렷하다.
건설업의 상품 기획은 이러한 발주처의 니즈에서 시작된다. 발주처가 공모한 아이템이 입맛에 맞는 건설 회사들은 선택 받기 위해 저마다의 방법을 제시한다.
‘너의 니즈에 대해 우리는 이러한 솔루션을 준비해봤어. 이는 우리만의 기술력과 노하우로 이루어진, 너에게 최적화 된 제품이지’
후려쳐서 정리하자면 제조업은 기성품을 만들어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 앞에 내놓는 것이고, 건설업은 특정 소비자의 요구에 맞는 맞춤 제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마트 판매용 레토르트 음식과 귀빈 맞이용 디너 성찬의 느낌이랄까.
물론 B2B냐 B2C냐에 따라 양상은 다시 달라지지만, 일단은 그렇다 치자.
여기서 제조업과 건설업의 주요한 차이점이 생긴다. 바로 제품 제작에 있어 관련 인력의 개입 정도이다.
완성된 제품만이 노출되어 소비자와 접하는 제조업과 달리, 건설업은 제품의 기획, 제조, 완성까지의 전 과정을 발주처와 긴밀한 위치에서 함께 한다. 때문에 외부고객과도 동시에 소통하며 일을 진행해야 하고, 이는 보다 체계적인 인력 관리와 각종 상황에 적합한 대응력을 요구한다.
또한 제조업의 제품은 설정된 정보에 따라 공장에서 제품이 출력 되지만, 건설업의 제품은 현장에 모인 관리자, 인부들의 손에 의해 하나 둘 쌓여간다. 같은 공간에서 다양한 공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관련 인력들의 실시간 협력이 필요하고, 이는 결국 사람 사이 관계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렇게 관계력은 건설 사업을 수행하는 중요한 축이 되고, 이러한 인간미는 기술의 상향평준화와 인공지능이란 시류에 있어 장기적 강점으로 작용할 것이라 생각했다.
다음으로 건설업의 또 다른 주요한 특징, 해외 근무가 있다.
규모가 있는 건설사가 취급하는 제품에는 보통 다리, 댐과 같은 국가 기반 시설이나, 각종 대규모 공장, 랜드마크급의 거대 빌딩이 있다. 하지만 국내 건설 시장은 이미 충분히 성숙하여 이러한 발주는 거의 씨가 마른 상태다. 때문에 대부분의 대형 건설사는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고, 이는 자연스레 건설직 인력들의 장기 해외 근무로 이어진다.
바로 이 점이 많은 취준생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다. 흔히 건설업 하면 연상되는 열악한 3D업종의 퍽퍽한 느낌에 더해, 높은 확률로 덥고 습한 까만 나라에서의 장기 근무. 워라밸이 직장 선택의 중요한 축인 요즘 시류에 있어 건설업은 애초 옵션에 넣지도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나는 이마저도 좋았다. 본래 역마살이 적잖은 성격이라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이것이 경험지상주의와 콜라보를 이루어, 해외 근무는 내게 굉장한 가능성으로 비추어졌다. 주기적으로 일터, 팀원, 협력사가 글로벌 단위로 바뀌어 다양한 경험을 동반하는 그 역동성은, 내가 가질 업에 있어 빠져선 안될 필수불가결한 요소 같았다.
이렇게 나는 ‘비전’, ‘해외 근무’ 라는 건설업의 특성에 끌렸고, 결국 선택은 건설업으로 기울었다.
맘을 정한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모든 부담을 덜어내고 고삐가 풀린 나는 입사 전까지 주어진 약 2.5개월의 자유시간을 친구와 술, 여행으로 가득 채웠다. 사실 지나고 나니 이 시간이 무척 아쉽다. 노는 것도 해본 놈이 한다고, 학부생활 내내 친구들과 술 마실 줄만 알았던 나는 갑작스레 주어진 자유가 어색했다. 딱히 특별하게 하고싶은 것도 없는데다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잊었다.
그렇게 취업턱이란 훌륭한 핑계를 얻은 나는 그간 못 본 사람들을 다 보고 미뤄둔 술을 다 마셔버리겠다는 기세로 주6일 음주제를 충실히 이행했다. 다행히 주위 영특한 친구들 덕분에 2회의 일본 여행과 2박3일 전주 방문기를 다녀왔고, 한번의 소개팅과 한번의 고백 실패를 겪으니 어느새 시간은 훌쩍 지나있었다.
역시 무척 아쉽다. 그 시간에 소개팅이나 더 열심히 할 것을. 부질없는 가정이다.
입사 이후에는 약 3.5개월간 신입교육을 받았다.
백 단위 청중 앞에서의 자유 PT, 팔자에도 없던 불량배 연기, ‘소방차’ 춤 등 진귀한 경험을 했던 그룹 신입교육 외에도 건설 입문교육, 원자력 교육, 플랜트 직무교육까지. 각종 교육이 참 많기도 했다. 빡세게 굴릴 실무 전에 쉬어가라는 사측의 배려인지, 교육은 하나같이 수면에 적합했다.
어마어마한 신입교육 예산과 시간을 들여 그런 실무에 하등 쓸데없는 마라톤 교육이라니, 이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다.
한낱 뱁새가 알 수 없는 황새의 뜻이려나.
그리고 드디어 16년 6월 15일. 나는 설렘반 걱정반을 안고 비행기에 몸을 실어 말레이시아 LNG Plant Project 현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