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신입 외노자 생존기

by Min

외노자 (명사) : 외국(인) 노동자의 준말, 타국에서 일하는 노동자.


사전적 의미는 잠깐 치워두고, 머릿속에 각자 나름의 외노자의 모습을 그려보자. 저마다 가진 외노자에 대한 이미지가 다르겠지만, 지난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통용되는 체감적 어감은 대략 이렇다.


덥고 습한 기후, 고된 육체 노동, 그리고 타지의 설움과 외로움.


반듯한 정장을 입고 글로벌 한 사업장을 오가며 비지니스 하는 이들에게 외노자란 어감은 무언가 어색하다. 우리가 주위에서 보고 들은 외노자는 좀 더 현장의 땀 내음이 물씬하고 보다 많은 힘이 들어야 한다. 지난 역사적 경험과 기타 매체로 인한 편견이 크겠지만, 은연중에 합의되고 고유명사화 된 외노자의 이미지가 그렇다.

보다 직접적으로, 외노자가 된 나를 보는 이들의 눈빛에 일순 스치던 그 걱정들이 이를 방증했다. 그것이 어떤 마음인지 나 또한 잘 알았으나, 딱히 내게 큰 의미로 남지는 않았다.

정작 당사자인 내게는 그 외노자란 어감이 그다지 와닿지 않았으니까.


왜 그럴까. 이유를 생각해보기도 전에 이미 답이 떠오른다.

왜냐하면 난 원래 그런 성향이었기 때문이다.

타고난 뻔뻔함이라 해야할지, 잘 다듬어진 적응력이라 해야할지, 나는 예부터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저항이 매우 미미한 편이었다.

중학교 전학 간 첫 날, 재수를 위해 경기도 광주 구석탱이 기숙학원에 입소한 날, 대학 등교 첫 날, 입대하던 날, 미국에 건너가 홈스테이 호스트를 처음 보던 날, 회사 OT 첫 날.

환경이 극적으로 바뀌는 이벤트가 생길 때마다 매번 불안함과 초조함은 주위 사람의 몫이었고, 정작 나는 평온하기가 그지 없었다(정확히는 평온을 가장한 잔잔한 들뜸이었다). 새로운 적응을 앞에 두고 불안함에 초조했던 기억은 아무리 검색해봐도 20대의 메모리에는 없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찍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낙천성으로 무장한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기술이 체화되어 있는 아이였다.


성격에서 비롯한 잔잔함 외에, ‘힘들면 또 얼마나 힘들까’란 생각도 있었다. 지난 세월 습득한 단편적인 간접경험들, 그리고 이를 해석할 혈기왕성한 20대의 미욱한 소프트웨어의 하모니로 ‘어딜가나 일 힘든건 매한가지지, 그래도 사람 사는 곳 아니겠어?’ 라며 홀로 덤덤했다. 여기에 특유의 청개구리 기질까지 더해지니, 내 안의 외노자는 더 이상 통념의 그것이 아닌, 도전해서 증명해보여야 할 문제로까지 발전했다.


때문에 주위의 반응에도 아랑곳 없이, 출국을 앞둔 난 되려 설렜다. 우려를 표하면 가능성를 말했고, 의문에는 기대를, 카더라엔 더 큰 두근거림으로 받았다. ‘어딜가나 사람 사는데는 똑같은데 왜 이리 난리들이야’라 생각하며 의아하기까지 했다.

그랬다. 당시의 나는 어설프게 다부진, 내실없이 순수한 아이였다.


약 5시간의 비행 끝에 싱가폴 창이 공항에 도착했다. 인천 국제 공항과 함께 세계 최고 공항으로 손꼽히는 만큼 굉장히 세련되고 깔끔했다.

‘그래도 뭐, 비슷하구만’

짧은 감상을 뒤로 하고 공항을 나서는데, 출구 자동문이 열리자마자 깜짝 놀랐다. 그 덥고 습한 공기라니. 분명 해가 지고 한참인 밤 10시였음에도, 마치 사우나와 같은 열기에 숨이 턱 막혔다. 픽업을 기다리는 삼십여분의 시간이 어찌나 길던지, 가만히 서있었음에도 온 몸은 그새 후끈 달아올라 땀으로 흥건해졌다. 말로만 듣던 동남아시아의 열대성 기후를 온 몸으로 체험한 나는,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라며 당당하던 나는, 슬그머니 당혹스럽기 시작했다.

‘추위엔 그럭저럭 괜찮지만, 더위엔 쥐약인데…’

순간 ‘외노자’란 단어가 머리를 스쳐갔다. 이는 이전과는 다른 빛깔로 좀 더 선명한 존재감을 어필하기 시작한 ‘외노자’였다.


이후 싱가폴-말레이시아 국경을 넘어 3시간 가량을 더 달려야 나오는 직원 캠프를 처음 봤을 때,

캠프에서 모래먼지를 가르며 30~40분을 더 달려야 있는 건설 현장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그 현장을 가득 메운 천 단위의 현지 워커들을 직접 마주했을 때.

그제야 비로소 스쳐갔던 그 선한 이들의 우려가 가슴에 와 닿기 시작했다.

‘아 이게 외노자구나. 그 외노자가 나였구나!’

그렇게 나의 외노자 라이프는 새삼스럽고도 한 박자 늦은 깨달음과 함께 시작되었다.


내가 속한 현장인 LNG Plant 건설 프로젝트는 말레이시아 최남단인 Pengerang 지역 해변가에 위치해있었다.

프로젝트의 개요를 간단히 하자면 이렇다. 말레이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인 PETRONAS를 발주처로 둔 LNG 수입기지 건설. 여기서 LNG 수입기지란, 액화시킨 천연가스(LNG, Liquefied Natural Gas)가 커다란 배에 실려오면 저장탱크에 옮겨 저장한 뒤, 이를 필요에 따라 공급라인으로 송출하는, 한마디로 입출력 기능이 포함 된 천연가스 저장 공장을 뜻한다.

2014년 10월부터 2018년 4월까지 약 4년의 공기를 가진 프로젝트로서, 내가 합류한 2016년 6월은 공기가 반 정도 지난 상태였다. 그럼에도 처음 현장에 들어선 나를 맞이한 건 듬성듬성한 철제구조물들과 모래바람이 흩날리는 황량함이었다.

잠시 그 살풍경함에 당황했지만, 이내 납득했다. 그도 그럴것이, 건설 프로젝트란 본래 현장 오프닝 이전에 팀구성, 구매, 설계 등의 이슈가 선행되어야 하고, 오프닝 이후에는 기기들이 설치 될 기반 공사인 기초 토목 작업에 장시간 소요되기 때문이다. 내가 인볼브 된 시점은 이제 막 기초 토목공사가 부분적으로 마무리 되어 본격적인 기기설치를 한달 가량 남겨둔 때였다.


프로젝트 기계시공 부서 기기설치팀에 소속된 나의 업무는 두가지였다.

먼저 내부 / 외부 고객과의 응대 및 협업 업무다. 내부 고객은 구매, 설계, 관리, 타 시공팀 등으로 같은 회사 소속의 선임들을 뜻하고, 외부 고객은 발주처와 협력업체 소장 및 워커들을 의미한다.

두번째는 담당한 기기설치 협력업체와의 공정 조율 및 관리였다. 말은 그럴 듯 하지만 한마디로 말해 발주처와 협력업체 사이에서 문제 수습과 해명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중간관리자 역할이었다.


인생은 실전이라 했던가.

현장에 배치 되자마자 담당자란 타이틀을 달고 현장에 내던져진 내게 문제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담당자였다.

한가지 공정을 담당하여 위로는 발주처, 아래로는 담당 협력업체를 응대하고 조율해야 하는 사람. 내가 바로 그 담당자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몇 십년 단위 경력을 가진 현장 베테랑들 앞에서, 나는 그렇게 맑을 수가 없었다. 본사에서 고급진 마라톤 신입교육 커리큘럼을 거치며 단련된 나는, 실제 현장 실무 앞에 너무도 무력했다. 용어부터 프로세스, 하다못해 전사전산시스템까지. 배웠던 것은 내용이 달라 새로 배워야 했고, 새로운 것은 그러려니, 더욱 새롭게 알아서 익혀야 했다.

그렇게 대책없이 맑은 아이가 당장 담당자의 위치에서 발주처를 상대하고, 협력업체 소장과 시공 공정 관리를 해야 했다. 아무리 신입 관리자가 대형 건설사의 고질적인 문제라지만, 막상 내가 겪고보니 스스로도 황당한 구조였다.


현장 출근 첫 날, 먼저 현장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선임들께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무언가 익숙한 느낌이다. 인위적으로 살갑지만 여운이 남는 미소와 위아래 스캔하는 눈빛까지. 입대하고 자대배치를 받은 첫 날, 신병을 받고 ‘얘는 쓸만하려나’ 가늠하는 선임들의 모습 그것이었다.

다음으로 발주처와 담당 협력업체 사무실을 찾아다니며 직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또 느낌이 익숙하다. 웃으며 환대하지만 표정과 어투 끝에 묻어있는 진한 찝찝함. 이것은 용산전자상가에 카메라를 사러 갔을 때,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던 직원의 모습이다.

그들의 면면을 보고 난 후, 역지사지의 미덕이 일찍이 체화 된 나는 그들의 입장에서 찬찬히 나를 돌아보았다. 역시 자연스레 깊은 한숨부터 새어나왔다.


다른 문제는 글로벌 스텝이었다.


(계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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