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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월 Dec 01. 2019

시나몬롤빵을 먹으며 관대함을 생각한다.

영화 <카모메 식당>

영화 <카모메 식당>의 주인공 사치에(고바야시 사토미 분)는 핀란드 헬싱키에서 갈매기라는 뜻을 가진 일식당 <카모메 식당>을 차렸다. 한 달째 손님은 없고 식당을 지나가는 덩치 좋은 핀란드 아줌마들은 식당 안의 사치에가 어른인지 어린이인지(동양인의 체격이 북유럽 사람에게 상대적으로 너무 작다) 구분 못하며 손님 없는 카모메 식당을 걱정한다.  

2007년 이 영화를 봤을 당시 나는 40대였다. 나의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팍팍함을 느끼던 차에 이 영화의 주인공 사치에의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낯선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푸근함과 상냥한 미소가 나를 설레게 했다. 한순간, 내가 원하는 멘토를 만난 것 같아서 나는 그녀처럼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했었고, 영화의 배경이 된 헬싱키는 언젠가 가보고 싶은 로망의 장소가 되었다.  

드디어 이번 여름 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핀란드역( 에드먼드 윌슨이 지은 레닌의 러시아 혁명 과정을 다룬 <핀란드역까지> 핀란드역)에서 3시간 반의 기차를 타고 핀란드 헬싱키 중앙역에 도착했다. 

아들이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핀란드 헬싱키로 교환학생을 오는 바람에 우리 가족은 여름휴가라는 핑계로 이곳에 오게 되었다. 저녁이라 쌀쌀했다. 여름인데도 비가 오니 으슬으슬했다. 커피가 생각나는 날씨였다. 그래서 핀란드 사람들이 인구당 커피 소비량이 한때 세계 1위였던 적도 있었구나 생각했다. 

나는 헬싱키의 중심가 서점이 있는 카페 알토에 들렀다. 서점 속 2층의 카페는 영화에서 보던 그대로의 테이블, 의자, 조명, 심지어 빵을 진열해놓은 진열대까지도 똑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테이블에 일본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카모메 식당이 일본 영화이니 여기가 핫스팟이라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며칠 헬싱키에서 지내며 이 나라가 일본이라는 나라와 비슷한 정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무로 둘러싸인 핀란드는 온통 나무로 된 가구와 숲이라는 환경 속에 산다. 디자인도 깔끔하고 단순한 젠 스타일의 디자인도 눈에 띈다. 때마침 핀란드의 유명한 건축가 알토가 만든 디자인 샵에서 일본 생활도자기 및 가구 콜라보 전시가 열렸다. 어느 작품이 핀란드 것인지 일본제인지 구분 못할 정도였다. 우리가 동양인이니 일본 스타일을 알아서 그나마 구분하지 다른 서양인들은 잘 모르겠구나 싶었다.

사우나가 인구 대비 두배로 많은 이 나라 사람들은 하루 일과의 시작과 끝을 사우나로 끝낸다. 일본 사람들의 온천과 비슷하게 생활화된 모습이다. 개인적으로 사우나가 한국에서 이상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게 마음에 안 든다. 핀란드어인 '사우나'라는 말 나무로 된 방에서 돌을 데워 그 돌에 물을 뿌리는 방식으로 공기의 대류현상을 일으켜 순간적인 고온에 땀을 흘리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오직 뜨거운 열에 피부를 바짝 마르게 해서 땀을 쥐어짜는 방식이 아닌가? 사우나하는 시간도 우리나라 스타일은 오래 걸려야 땀이 나지만 핀란드는 5분 이상  머무르기 힘들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기 때문이다. 사우나 중간에 나왔다 물을 마시고 찬바람에 상쾌함을 누리는 방식이었다.  핀란드인들이 사우나 후에 바다에 뛰어든다는 게 이해가 갔다. 하지만 헬싱키의 바닷가에 자리 잡은 멋진 로윌리 사우나에서 우리 가족은 그럴 용기가 없었다.

  영화에서 카페 알토는 사치에가 미도리를 만난 장소이다. 만화영화 갓차 맨의 가사를 알려달라는 사치에의 부탁에 미도리는 성실히 답해주고 그 인연으로 사치에의 집에서 기거하며 가게에서 일까지 도와준다.

손님 없는 식당에서 사치에를 돕는 미도리는 왜 하필이면 일본에서 일본음식을 하지, 이 머나먼 헬싱키에서 주먹밥을 만드느묻는다. 사치에는 여기는 소박해도 맛있일본 음식을 사람들이 알아줄 것 같아서 라고 대답한다. 핀란드의 대표적 음식이 연어이고 일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아침식사가 연어구이이니 통할 거라는 말이다.  실제로 헬싱키는 초밥집이 많다. 지나가다 유리안에 비친 초밥집 식당 안 풍경은 동양인인 나도 낯설다. 마치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형형색색의 초밥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흡사 우리나라 분식집 김밥을 보는 기분이었다.

사치에는 핀란드인들이 즐겨먹는  시나몬롤을 식당에서 구우며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한다. 그 냄새로 사람들을 식당에 불러들이고  그다음에는 일본음식을 자연스럽게 소개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동네 맛집으로 변한 것이다. 거기에는 사치에의 인내심과 철학, 그리고 관대함이 숨어 있었다.

서울에 돌아와서 나는 핀란드 스타일의 시나몬 롤이 너무 먹고 싶었다. 한국에서 파는 시나몬 롤은 달고 버터가 너무 많이 들어 있어 그 맛이 안 났다. 더군다나 프랑스식 빵집이 많아 비슷한 맛을 가진 빵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파리바게트의 연유 빵과 김영모제과점의 블루베리 연유 빵을 맛보고 내가 핀란드에서 맛봤던 가장 비슷한 맛을 찾아냈다. 물론 시나몬을 직접 뿌려야 되겠지만 얼마나 반가웠는지.

 나는 가끔 운동가다 들러 사는 연유 빵을 먹으며  사치에가 아닌 내가 보고 느꼈던 헬싱키를  생각하며 남에게  관대하고 사람 좋은 중년을 보내고 있다.

가끔은 예전부터 내가 인간관계가 좋았던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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