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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달꼬달 Oct 11. 2022

당신은 오은영이 아니잖아요

우리 아이가 자폐스펙트럼(ASD)이라니

꼬달이의 병원 검사 결과지를 받은 지 두 달이 넘었다. 나는 이제야 마음에 평정심을 잡고 그날을 회상하며 글을 쓰고 있다. 아이의 검사 결과를 듣고 한 달 내내 페이퍼 커팅만 붙들고 있었다.

(페이퍼 커팅 아트:종이에 그려진 도안을 칼로 오려내 완성하는 종이공예)


무엇을 해야 할지 의욕이 생기지 않아 칼만 잡고 있었다. 페이퍼 커팅을 10장 넘게 끝내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고 조금씩 예전의 생활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담담하게 우리 꼬달이의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예약된 날짜에 병원을 찾았다. 한 발자국 내딛는 발이 너무나 무거웠다. 발에 무거운 돌자루라도 달린 것 같았다. 누가 나의 신발에 무거운 추를 달아 놓았는지 의심도 해봤다. 마음은 커다란 바위가 누르는 듯 답답했고 꾹꾹 쑤시고 아팠다. 오늘은 꼬달이의 검사 결과를 듣는 날.     


우리가 진료실로 들어가자 의사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표정으로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검사하는 날 아이의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검사의 신뢰도는 떨어질 수 있으나 앞으로 방향을 잡기 위한 지표라며 말을 이어나갔다. 


의사는 검사하는 동안 꼬달이가 검사자와 상호작용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엄마인 내가 대답한 답변을 참고로 우리 꼬달이는 자폐스펙트럼(ASD)이 맞다고 말했다. 거기에 지능지수도 평균에 많이 못 미치기 때문에 지적장애를 동반한다고 설명했다.      


우리 아이가 자폐스펙트럼(ASD)이라니...     


남편과 나의 얼굴은 굳어졌고 검사 결과를 받아 드릴 수 없다고 말하자 의사는 어두워진 우리의 눈빛을 읽었는지 우리에게 위로라고 던진 말은 이랬다.


“저도 제가 틀렸으면 좋겠습니다.”     


난 속으로 외쳤다. 당신은 오은영이 아니잖아요. 어디서 어설픈 오은영 박사님을 흉내 내시는 거죠. 당신이 틀렸어요. 우리 아이는 ASD가 아니에요. 발달이 느리고 사회성이 조금 부족하다고 ASD라고 판단해 버리는 건가요. 그리고 이제 와서. 이 병원을 찾은 날이 언제인데 이제와 우리 아이가 ASD라고 말하는 건가요? 이런 돌팔이 의사 같으니...


나의 작은 희망은 그렇게 물거품이 되어 날아갔다. 우린 그렇게 진료실을 나왔다. 그리고 받아 드리고 싶지 않은 말들로 가득한 검사 결과지를 돈까지 지불해 받아와 챙겼다. 보험 문제 및 학교 진학을 위해 서류가 필요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과 나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의사를 욕할 힘도 없었다. 의사를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의사는 2년 전 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 장애등록서류를 해주겠다고 했다. 진단에 의미를 두지 말고 혜택들을 모두 챙겨 적극적으로 치료를 해야 한다고. 의사는 간접적으로 2년 전에 나에게 이미 말해 주었던 것이다. 의사는 진단을 미룬 것이 아니라 아이의 성장을 기다려준 것이다.      


섣부른 진단으로 아이의 가능성을 밟아 버릴 수 있다는 걸 의사는 알고 있었다. 의사가 해줄 수 있는 건 약 처방뿐. 나이가 어리고 일상생활이 가능한 우리 꼬달이에게 약 복용을 일찍 시작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했을 것이다. 의사는 주절주절 말하지 않았지만 지난 시간 동안 의사의 판단을 짐작 못 할 것도 아니었다.    

 

한참을 말없이 가다 남편은 차를 세워 나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그제야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종이에 적혀있는 아이의 진단명보다 나를 속상하게 만든 건 지난 시간들이었다.     


재작년, 작년, 지난겨울, 올해 봄, 한 달 전 그리고 어제의 시간들이 후회가 되었다. 


처음 우리 꼬달이에게 물음표가 생겨났을 때부터 이미 예견된 일을 내가 받아들이지 못했던 건 아닌지. 일찍 발견해 조기에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닐 거라고 믿었던 건 아닌지. 지난 시간 걱정만 했을 뿐 적극적으로 치료를 하고 대처하지 못해 시간 낭비를 한건 아닌지. 지나버린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 자꾸만 눈물이 났다. 

     

하지만 계속 눈물만 흘리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두 달이 지난 지금, 나는 달팽이 엄마임을 받아들이고 다시 결심했다. 이제 더 이상 어제를 후회할 시간을 보내지 않겠다고. 늦었을지 모르나 이제라도 매일매일을 열심히 보내야 한다고. 1년 후에 이 시간을 뒤돌아 보았을 때는 지금처럼 후회하지 않겠다고. 지난 시간을 후회하는 날은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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