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 잡초의 다짐

by 눈항아리


흙은 양분과 물을 머금고 있다 풀씨가 내려앉으면 최선을 다해 자리를 양보해 주고 자신이 가진 것을 뿌리에게 내어준다. 큰 뿌리에서 나오는 작은 뿌리까지 다치지 않게 모두 품고 보듬어 준다. 그래서 대지를 어머니라고 하나보다.


마당 어느 귀퉁이라도 정원 울타리 안쪽에 터를 잡은 녀석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조상 대대로 이름이 알려져 정원수로 선택받은 녀석들은 관리를 받으며 자란다. 이들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요행으로 바람을 타고 날아와 정원에 자리를 잡은 들풀 녀석들도 멀쩡한 수저 하나는 가지고 난 것이다. 식물에게 흙이란 생명의 근원이니 정원 안쪽 수북이 쌓인 흙더미는 어수선한 마당의 어느 장소보다도 명당이다.


그러나 정원 바깥, 숟가락 하나에 담을 양도 안 되는 틈바구니의 흙을 찾아 근근이 뿌리를 내린 아이들은 없는 흙으로 수저 하나를 새로 빚어야 할 판이다. 하늘에서 골고루 뿌려주는 빗물이 움틀 희망을 주었을까. 흙 몇 알과 작은 빗방울에 담긴 양분에 의지해 가까스로 싹을 틔운 아이는 빗물이 스미어든 출구를 찾아 느릿하게 움직인다. 빛은 어느 틈바구니에서 들어왔는지 모른다. 조용히 그러나 깜깜한 어둠 속에서 천천히. 아이는 빛을 향해 자라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좁은 틈을 비집고 빼꼼 세상을 향해 고개를 내밀었는데...


“저 풀을 뽑아야 하는데... “


마당에 깔린 블록 사이로 잡초가 하나 둘 올라오기 시작하면서부터 남편 사장은 입이 마르도록 말했다.


세상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세상에 처음 나와 들은 말이 자신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긴 기다림 끝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삶과 죽음은 늘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희망과 절망을 함께 맛본 아이. 신세 한탄을 해보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다. 들이민 얼굴을 구기고 땅속으로 파고 들어갈 수도 없지 않은가.


저 풀을 뽑아야 하는데.

저주와도 같은 사장의 말은 두렵다.


며칠 전 길 건너 고깃집 사장님이 토치로 틈새 잡풀을 지지는 걸 본 남편 사장. 우리도 틈새에 올라오는 잡초를 불로 지질까 한다. 지난해에는 뜨거운 물을 들이붓더니 이제는 불까지 동원한단다. 불이 아니라도 뾰족한 도구를 준비해야 요 녀석들을 긁든지 자르든지 파내든지 할 수 있다. 시원한 그늘도 없이 뜨거운 태양 아래 볕을 쬐며 마당 한가운데를 당당히 점령하고 겨우 뿌리를 내렸건만 삶은 가혹하기만 하다.


그걸 왜 뽑아. 빗물에 흙도 안 쓸려내려 가고 좋기만 한데?


돌과 돌 사이 틈새를 겨우 비집고 올라오는 잡초의 생명력은 놀라울 따름이다. 보이는 흙보다 더 많은 초록의 양에 또 놀란다. 이 녀석들 흙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돌 틈 어디라도 박히기만 하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는지도 모르겠다. 흙이 어디 보이기나 하는가. 적은 흙이라도 괜찮다. 작은 품이라도 괜찮다. 아이들에게 제 한 몸 누일 공간, 흙 한 줌이면 충분하다.


빛은 어디에나 있으니.


작은 풀은 일단 자라 보기로 했다. 혹시 또 아는가? 마당 주인이 깜빡 잊고 있는 사이 자신의 키가 훌쩍 자라 인정받는 풀이될지도 모를 일이다. 최대한 예쁘게 정원 아이들처럼 뽐내 보는 거야. 아이는 애써 두려움을 떨쳐낸다. 그저 오늘의 바람을 즐기고 햇볕을 즐기고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을 즐긴다.



내일

가스 불에 스러진다 해도

오늘 나는

쨍한 햇볕을 쬐겠소.


내일

쇠꼬챙이가 내 몸을 후벼 파도

오늘 나는

탱탱 물오른 초록 이파리를 뽐내겠소.


내일

날카로운 칼날이 나를 두 동강 낸다 해도

오늘 나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한가로운 음악을 즐기겠소


내일

한 줌 흙에서 쫓겨나

다시 한 줌 흙으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내일

빛은 있을까?

오늘 광합성을 많이 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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