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배추 벌판이 부른다. 교문 앞에 서니 연둣빛 논과 초록의 배추밭이 설핏 보인다. 복실이와 손을 잡고 그 길을 걸으면 참 좋겠다.
“복실아, 학교 째고 엄마랑 산책 가자.”
아이는 절대 안 된다며 교문에서 간단하게 인사만 하고 줄행랑을 쳤다.
지난가을, 한 번은 등교 시간이 좀 남아 복실이와 같이 걸었다. 등교 시간에 맞춰 데려다준다고 살살 꼬여냈다. 알람도 맞추고 걷기 시작했는데, 아이는 학교와 멀어지자 안절부절못했다. 가야 할 곳이 정해져 있는 아이는 학교에서 벗어나는 게 불안한가 보았다. 배추 벌판을 좀 더 걷자는 나는 동쪽으로 손을 잡아끌고, 학교로 가야 하는 복실이는 서쪽으로 손을 잡아끌었다. 그 후로는 복실이에게 같이 걷자고 안 해봤다. 각자 갈 길이 있는 것이다. 아이는 학교로, 나는 배추 밭으로.
굳이 배추밭으로 가야 할까. 10분, 20분 걸어서 무슨 뱃살을 빼겠다고. 금 배추를 본다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 것도 아니고.
골목길을 걸을 때만 해도 구름이 가득했다. 짙은 회색 구름 사이로 비집고 나오지 못하는 태양은 불만을 가득 품고 볼을 부풀리고 있었다. 그 빛이 구름 사이로 마구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들판에 서니 드디어 해님이 나왔다. 스무 걸음 걷는 사이 햇볕이 뜨거워졌다. 구름은 흰색으로 변했다. 하늘의 조화는 시시각각 변한다. 이런 하늘을 보며 같이 걸으면 좀 좋아.
구름 가득했던 마음이 배추 벌판에 서면 두 쪽짜리 대문을 열어젖힌 것처럼 활짝 펼쳐진다. 내 영혼은 너른 문 사이로 빠져나가 들판 위로 펼쳐진 하늘을 자유롭게 유영한다. 짧은 시간이 나에게 주는 최선의 장소를 떠돌아다닌다. 잰걸음으로 시멘트 바닥을 빠르게 디디며 방방 떠다닌다. 어느새 타이머가 10분이 넘어가고 20분을 향해 달려가면 얼마나 아쉬운지 모른다.
배추 벌판이 내게 주는 것은 체중 감소가 아니다. 목표와 다른 것을 주는 벌판. 바쁜 아침 시간, 출근 전에 시간을 쪼개 걷고 싶은 이유는 살아 숨 쉬는 느낌을 이곳에서 얻기 때문이다. 정체되지 않고 무한히 변하는 자연, 관리되며 일구어지는 삶의 현장을 휑한 이곳에서 마주하기 때문이다.
길가 밭두렁 무성한 수풀에서 떼 지어 놀던 참새떼는 두 무리로 나뉘어 후루루 날아 전깃줄에 오르고, 덤불숲으로 날아간다. 내 빠른 걸음 옆에서 풀벌레는 반주를 해준다. 하얀 나비는 들깨 송이 넘나들고 배추밭 휘휘 돌며 날갯짓한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중년의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구부정한 자세로 걸어온다. 주머니에서 우렁찬 노랫소리 울려 퍼진다. 가끔 만나는 산책자들조차 들에서 만나면 존재감이 거대해진다. 내 존재도 그들에게 그렇게 느껴질까.
짧은 시간 아침의 배추 벌판 산책은 황량한 나의 일상, 종일 갇힌 건물 속에서 보내야 하는 나에게 한 줄기 생명의 바람을 불어넣어준다. 바쁨 속에 여유 한 줄기, 그 바람을 나에게 실어 보낸다.
오늘도 힘내.
뱃살은 갈 데 없고 바람만 분다.
스무 걸음 앞에 차가 보인다. 전화가 울린다. 남편이다. 커피를 마시려고 기다리고 있단다. 나를 기다리는 건 남편이다. 우리의 일터에서, 나의 삶의 터전에서 그가 기다린다. 모닝커피를 마시며 빵은 먹지 말기를, 남은 빵이 없어서 오늘은 포도 한 송이를 남편과 뜯어먹었다. 오늘도 힘내자,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