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견 일기> 오십견이라는 이름의 가벼움

도움과 배려

by 눈항아리


나는 10킬로그램 쌀, 15킬로그램 설탕, 때로는 20킬로그램 쌀도 번쩍 들고 다니던 사람이다. 몇 달 전만 해도 전혀 문제 되지 않던 무게들이 이제는 엄청 큰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계란 한 판을 왼손에 얹고 다니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마트에 갈 적에는 꼭 필요한 것만 사든지, 아니면 누군가를 대동하고 가야 한다. 그래도 무거운 봉지를 들어야 하는 경우라면 하나가 됐든, 둘이 됐든, 거기에 계란 한 판이 더해지든 왼손은 사용하지 않는다. 오른손에 모두 쥐고 얹고 몸을 왼쪽으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오른쪽 어깨를 구부정하게 하늘로 올리고 뒤뚱거리며 걷는다. 몸의 균형이 천천히 무너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왼팔에 족쇄 하나를 채워 놓은 것 같다. 그러나 그건 아픈 팔을 위한 온몸의 배려이기도 하다. 왼팔을 사용 최대한 사용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때면 500그램이 조금 넘는 포토 필터를 왼손에 쥐고 나르고 흔들고 당겨야 한다. 그걸 뻔히 보고 있던 어느 날 오른손과 오른팔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왼손은 그라인더에서 분쇄된 커피를 포토필터 바스켓에 담아 템핑 매트로 이동한다. 템핑 하는 일은 오른손의 일이지만 이동하는 일은 왼손의 일이다. 포터필터를 커피 머신까지 이동하는 일도 왼손의 일이다. 머신 그룹헤드에 끼우고 오른쪽으로 힘껏 당겨야 하는 일도 왼손이 전문이었다. 샷 추출이 끝나면 끝이냐 하면 한 절반 정도 왔다고 말할 수 있다. 커피 한 잔을 뽑는 일은 멀고 멀기만 하다. 샷 추출 후 포토필터 바스켓을 꽉 채운 고동색의 커피찌꺼기를 비운다. 넉박스 중간을 가로지르는 고무가 덧대어진 가로대로 포토필터를 이동한 다음 탕탕 친다. 이건 다행히 오른손의 일이다. 찌꺼기를 비우고 나면 바스켓을 세척하기 위해 머신으로 다시 이동한다. 여기서 빠르게 손이 바뀐다. 오른손에 있던 포토필터를 왼손으로 바꿔 잡는다. 머신에서 지질하게 짧게 흘러나오는 물에 바스켓을 씻어줘야 한다. 졸졸 흐르는 물에 젖은 분쇄물의 찌꺼기를 헹궈 버리고 다시 그룹헤드에 포토필터를 끼웠다. 빼며 물을 채우고 버리는 반복적인 일을 연속으로 한다.


커피를 뽑는 일련의 연속 동작들은 왼팔이 아프기 전까지는 전혀 문제 되지 않고 자연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500그램 포토필터의 무게를 지탱하며 자유자재로 휘두르던 왼팔이 겁을 내기 시작하면서 멈칫하는 구간들이 생겨났다. 특히 커피 머신의 그룹헤드에 끼우고 오른쪽으로 꽉 잡아당기는 구간이 가장 큰 난관이었다. 오른팔이 왼팔 대신 500그램의 무게를 모두 짊어지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신 당기는 구간 하나를 오른팔이 맡았다. 가장 힘이 든 일이지만 왼손을 위해 오른손은 피하지 않았다. 커피를 추출하는 동작이 꼬지 않으면서도 왼손을 도울 수 있는 부분을 정확하게 찾았다.


도움을 주고받는 오른손과 왼손의 관계는 서로 부담스럽지 않다. 둘 다 내 몸이니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가족의 도움도 마찬가지다. 식구들이 달라붙어 빨래를 갠다. 내 옷도 정리해 준다. 서랍장에 안 넣어서 개켜진 상태로 탑이 되어 소파에 있다. 쓰러져 다시 안 갠 상태가 되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이불을 정리를 해준다. 내 이불도 군소리 없이 개 준다. 큰 이불을 털고 개키는 일은 선뜻 내키지 않는다. 이불 정리는 생각만 해도 왼팔이 덜덜 떨리는 일인데 아이들이 해주니 고맙다.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빼는 일도 대부분 아이들 담당이 되었다. 가끔 아이들이 잊을 때, 너무 늦어질 때는 내가 하기는 한다. 장을 볼 때는 큰 아이들이 짐을 들어준다. 택배 박스는 남편이 모두 날라준다. 뒷짐이 안 지어지니 팔을 몸 뒤로 하는 모든 일을 할 수 없다. 속옷을 입거나 왼팔에서 옷소매를 잡아당기는 일은 딸아이가 도와준다. 도움 받는 게 자연스럽다. 도움을 받으면서 미안하지 않다는 건 참 다행이다. 그런 가족이 있어서 고맙다.


어느 날 밤 이부자리에서 팔을 위로 쭉 펴느라 끙끙거리고 있었다. 나름 운동을 한다고 시간이 날 때마다 팔을 펴기 위해 노력한다. 뒤로, 앞으로, 옆으로, 하늘로. 누웠으니 당연하게 바닥에서 양팔 벌리기를 했다. 하늘로 팔을 올리며 왼쪽 팔꿈치가 바닥에 닿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나의 노력이 신음이 되어 애쓰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오른편에 누워있던 달복이가 말했다.

“엄마가 로봇 소리를 내. 하하하.”

복실이도 같이 웃었다. 순간 내 이마에 ‘빡’ 빗금이 열 개나 그어졌다. 그러나 할 일은 해야 했다.

“으으으, 끽끽끼, 으으윽, 끼기긱.”

그래 난 로봇 팔을 가졌다. 로봇 팔은 모든 일을 척척 해낼 것 같지만 내 팔은 좀 성능이 떨어진다. 소리만 끽끽 거리는 로봇. 그리고 그 로봇 팔은 가족의 배려와 도움 속에 아주 가벼운 생활을 하고 있다. 오십견이라는 이름이 무겁지만은 않은 이유다.


고통은 나눌 수 없다. 그러나 그 무게를 함께 짊어질 수는 있다. 내 몸과 같이 내 아픔의 무게를 짊어지고 함께 해주는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앞으로도 쭉 각자가 맡은 집안일을 열심히 해 주기길 바란다. 내가 집안일을 미루기 위해 아픈 건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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