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명절 연휴, 그런데 남편은 명절이 지났다고 생각한다. 가게 문을 열었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여전히 쉬고 있는 직장인들은 여전히 ‘명절 연휴 잘 보내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간다. 그들에게는 아직 진행형이다. 나에게도 아직 명절의 여운이 남았다.
명절이 무겁지 않을 수 없다. 가볍게 보내고 싶다는 것은 무거운 것을 내려놓고 싶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명절에 마음을 가장 묵직하게 하는 것, 그건 나이 듦이다. 부모님이 늙어간다는 것, 그건 참 묵직하고 마음이 아린 거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는 밝았던 전화통으로 전해지던 음성과는 달랐다. 가을 농사철엔 늘 그랬지만 살이 쪽 빠졌다. 수척해진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긴 연휴에 병원에 갈 수도 없고 병원 문 열 날만 기다린다고 했다. 물리치료과에 가면 아침부터 어르신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우리 아버지도 그 대열에 합류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늘씬한 다리를 내 두 손으로 설렁설렁 문질렀다. 국민학교 다니던 어릴 적부터 다리, 허리 안 아픈 데가 없었던 아버지. 몸이 허약한 게 아니라 고된 농사일 때문에 그렇다. 젊은 시절에도 아팠던 다리가 팔십이 넘어가는 나이에 안 아픈 게 이상하지. 어릴 땐 안마도 곧잘 해드렸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대충 하는 딸이다. 쉬지 않고 다리를 쓸어내리는 아버지의 검버섯핀 손이 눈에 밟힌다.
그런 아버지를 앞에 두고 ‘나는 오십견이요’ 그러는 못난 딸. 아버지는 뭉툭한 손으로 내 어깨를 주물러 주려했다. 그런 아버지의 손을 슬그머니 뿌리쳤다. 막 건들면 아프다며 아이처럼 칭얼거렸다. 마흔이 넘어서도 부모 앞에서는 아이가 되는 나. 그게 죄송하면서도 좋았다.
아버지 옆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한다. 올해는 가물어서 농사가 별로다. 깨는 한번 순치기도 못해줬지만 소담하게 열렸다. 비가 계속 와서 추수 못한 논에 있는 벼가 걱정이다. 가뭄으로 산에 먹을 것이 없어서 그런가 멧돼지가 자주 논밭으로 내려온다고 했다. 평소 말이 많은 나도 아버지 앞에선 말을 줄인다. 자주 못 보는 딸에게 할 말이란 매번 비슷하다. 건강 얘기, 농사일 얘기, 그저 그런 사는 얘기다. 때로는 정치 얘기도 하는데 그때는 목소리도 커지는 아버지다.
남편은 멀찍이 앉아 아이들과 게임 얘기를 하더니 꾸벅꾸벅 존다. 아이들과 사이가 좋은 남편의 모습을 아버지가 흐뭇하게 바라본다.
아픈 팔에 파스를 붙였다. 고통인지 편안함인지 모를 찌르르한 뜨거움이 팔뚝에 퍼진다. 아버지의 나이 듦을 마주하는 것은 파스를 붙인 것과 같은 느낌인지도 모른다. 파스는 밤새 나를 다독여 줬다. 파스의 박하향이 코끝에 찡한 긴 여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