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sunday farmers

우중(雨中) 들깨

by 눈항아리

들깨를 벴다. 가을비가 지독하게도 내리는 중 딱 하루 파란 하늘이 잠깐 보이며 반짝 해가 난 일요일이었다.


동네 들깨는 베다 말았다. 한두 집이 아니다. 아침나절에 수확하는 걸 보았는데 왜 깨를 베다 말았는지. 그냥 멈춘 채로 밭에 누워있는 들깨 몇 무더기와 그냥 심은 그대로 비를 맞고 있는 들깨. 기나긴 비, 거센 비에 깨가 다 털려서 수확을 포기한 것인지, 알이 차지 않아서 그런지, 비 그친 뒤로 수확을 미룬 것인지 모르겠다. 까맣게 그은 듯 들깨 전체가 타들어가는 빛깔을 보고 스무날 넘게 비를 뿌려댄 하늘을 지독하다 욕했다.


그래도 우리 집 들깨는 알차게 수확했다. 동네 사람들 보다 일찍 깻모를 심어서 가뭄 피해를 덜 봤고, 남의 들깨보다 훨씬 키도 크다. 우리 들깨가 크다고 내심 어깨가 으쓱했다.


남편 농부가 깻대를 자르고 나간다. 나는 끈으로 묶어 나른다.

“깨가 묵직한데? 엄청 잘 여물었나 봐.”

깨를 두 팔로 안아 들고 가자니 고소한 흙내음이 향긋하다. 들깨를 안아 들고 장홧발로 물기 지지한 흙밭을 밟아 지나가면서도 개선장군처럼 자랑스럽기만 하다.

“비 맞아서 그렇지.”

남편의 한 마디에 내 우쭐한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그래도 수확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양이 많지 않으니 비닐하우스에 넣을까 했다. 비닐하우스에는 미처 못 털은 참깨가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 수확한 들깨를 빗속에 그냥 두자니 거센 빗줄기에 다 털리고 남아나는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터널에 비닐을 씌우고 옮겨 놓자 남편과 의견을 모았다. 비닐을 임시로 씌워놓으면 될 일이었다.


깨를 옮기고 터널 아래쪽에 깨망사를 깔고 위쪽으로 비닐을 덮었다. 그런데 남편이 가지고 온 비닐은 검은색이다. 하얀 비닐은 없고 까만 멀칭 비닐뿐이란다. 폭은 터널에 한참 모자란다. 대체 어쩌자는 것인지. 그러나 열심히 남편은 까만 비닐을 풀었다. 임시방편으로 비가림을 하는 것이니 대충 양쪽 옆에 한 줄씩 비닐을 대고 중간에 하나 더 대어 총 세 장의 멀칭 비닐로 터널 지붕을 만들었다. 몇 년 쓸 것도 아니고 일주일만 버티면 되니까. 곧 비가 그친다니까.


비 오는 중에 수확을 한 것도 장한데 들깨 들어갈 비 막이 집도 만들어 줬으니 뿌듯하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알뜰하게 농사를 지어야 해. 속으로 생각했다. 언제는 알뜰하게 가을걷이를 했다고. 당장 고추는 주렁주렁 열린 걸 수확도 못하고 베지도 못하고 그냥 들에 널어놨으면서, 풀은 사방에 무성하고 호박이 주렁주렁 열려도 미처 손댈 여력이 없었던 건 다 잊었다.


다른 사람들은 수확을 못하는데 우리는 그래도 깨를 벴다. ‘그래도’에 약간의 사심을 더 담았다. 동네 사람들 들깨 걱정은 핑계고 그저 나 잘났다 으스대는 것이 꼴불견이었을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째, 터널의 멀칭비닐 세 개중 중간 것 하나가 홀랑 벗겨져 날아갔다. 날아간 게 아니고 한쪽으로 젖혀져 붙어버렸다 한다. 들깨는 오는 비를 다 맞고 있다.


혼자 속으로 뿌듯했던 마음, 나 혼자 우쭐했던 마음, 남 보다 낫다고 으스댔던 마음이 한순간 빗속에 훅 날아가 버렸다. 이제는 우리 들깨나 남의 들깨나 다 비를 맞고 있다. 비닐 한 장 차이로 그 마음이 바뀌더라는. 마음을 곱게 썼으면 우리 비닐이 비바람에 안 날아갔을까. 동네 들깨를 다 덮을 정도로 고운 마음을 너른 들녘에 뿌리고 다녀야 했을까. 내 마음속의 교만이었으나 우리 들깨, 남의 들깨가 같이 젖어가는 걸 보며 혼자 뜨끔한다. 마음을 곱게 쓰자.


수확을 앞둔 농작물을 들판에 널어두고 손 놓고 보기만 하는 애타는 농부의 마음을 누가 알까. 그러나 이제 그 마음을 조금 헤아려 본다. 우리 들깨가 비를 다 맞고 난 후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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