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맞이 체스 배우기 도전

by 눈항아리

방학 동안 5학년 아들에게 체스를 배우기로 했다. 핸드폰과 유튜브 그리고 게임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리는 아이를 위한 일이다. 이상한 전개다. 아이가 뭘 해야 하는데 도통 뭘 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나에게 체스를 가르쳐달라고 하니 흔쾌히 승낙한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엄마에게 가르쳐준다는 것, 체스를 모르는 엄마를 가르치면 같이 놀 상대가 되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아이는 지난 지난 한 해 체스를 배웠다. 가방에 체스판과 책을 매일 넣어가지고 다닐 정도로 푹 빠졌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같이 둘 친구가 없었다. 다들 흥미가 없었던 모양이다. 더구나 선생님은 미니 체스판을 장난감 취급했다. 장난감은 학교에 가져가지 못한다. 그래서 가방에서 슬그머니 빠지게 되었다.


아이는 두 살 어린 여동생에게 체스를 가르쳤다. 오빠를 이겨낼 재간이 없었던 딸아이는 매일 지는 게임이 싫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오빠가 가르치는 게임이 재미있었을 리 없다.


한동안 체스판이 안 보였다. 지금은 어느 구석에서 정처 없이 떠돌고 있는지 모른다. 책만은 책꽂이에 꽂혀있었는지 어젯밤 나에게 전달되었다. 깜빡 잊고 있었다. 방학 동안 아들에게 체스를 배워보겠다고 말한 것을, 오늘이 방학인 것을.


정말 재미있을까? 나는 때때로 아이들에게 말한다. 재미가 없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단다. 그렇다. 나에게도 똑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재미가 없어도 의미는 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건 좋은 일이다. 아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아이들에게 게임, 핸드폰, 유튜브, 쇼츠에서 벗어날 시간을 제공할 수 있다. 아들이 잘하는 것을 치켜세워줄 수 있다. 얼마나 자신감이 흘러넘치겠는가. 딸아이도 관심을 보일 것이 분명하다. 셋이서 매일 체스를 두는 거다. 체스 판을 노려보면서 골똘히 생각하면서 우리는 함께 시간을 보낼 것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말했다.

“우리의 인생 자체가 체스 게임과 같으므로 체스 게임을 시간이나 때우는 단순한 놀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헉! 나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뜨끔했다.

“살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일들이 체스판에서도 그대로 일어난다.”


긴 겨울방학 동안 아이에게 체스를 배우기로 했다. 체스를 배우며 삶의 지혜 또한 많이 배우기를...


나야 건투를 빈다.


체스를 모르는 나를 위해 쳇지피티에게 물었다.
“체스를 배우면 좋은 점을 알려줘.”


사고력·집중력 향상.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연습을 하면서 논리적 사고력이 좋아진다. (내 굳은 머리로 몇 수 앞을 내다볼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상대 수를 계속 예측해야 해서 집중력도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집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지기를 바란다.)


공부에도 도움

(이런 응큼한 생각이 내게 있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문제를 단계적으로 푸는 습관이 생겨 수학·과학 같은 과목에 특히 도움이 된다.

“왜 이 선택이 맞을까?”를 생각하는 힘이 길러진다.


계획 세우는 능력

무작정 두면 지는 게임이라 계획을 세우고 수정하는 능력이 생긴다.(무작정을 좋아하는 나에게 딱 맞는 배움이네.)

실패한 수를 복기하면서 자기반성도 배우게 된다.


인내심·멘털 강화

(100프로 보장한다!)

한 판이 길어서 참을성이 필요하고 지더라도 감정을 조절하고 다시 도전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다시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나에게도 생기기를,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전 세계 공통 취미

언어가 달라도 체스는 어디서나 통하고 온라인으로도 전 세계 사람들과 둘 수 있다. (내 아이를 글로벌한 인재로 키우는 거야!)


재미 + 성취감

실력이 조금씩 느는 게 눈에 보여서 성취감이 크고 퍼즐 풀 때처럼 뇌 쓰는 재미가 있다. (나의 뇌도 굴러가겠지? 규칙이 많아 보이던데 설마 안 구르지는 않겠지?)


체스를 모르는 나에게 아들은 책을 한 권을 건넸다. 서점에서 체스판을 살 때 같이 샀던 어린이를 위한 체스 책이다. 분명 내가 사 준 책이다.
‘이 방학에서 살아남기’는 차근히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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