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전야

욕실 물놀이

by 눈항아리

내일은 달복이가 소풍 가는 날이다. 장소는 에버랜드. 추석 연휴 첫날부터 내리던 비는 쉬는 날 없이 계속 내리고 있다. 날씨 예보를 보면 10일 동안 빗방울이 주르륵 연속으로 표시되어 있는 걸 보는 게 이제는 예삿일이 되어버렸다. 비가 내리는 일상. 비가 오는데 애버랜드에 가서 무슨 놀이기구를 탈 것인가. 빗길에 미끄럽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그러나 달복이는 신이 났다. 비 맞기 싫다면 실내에 있는 걸 타면 될 테다. 맛있는 걸 사 먹고,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좀 재밌겠는가.


“달복아 내일 장화 신을 거야? ”

“아니, 운동화 신을 거야. 내일 비 안 온대. ”

달복이는 비가 안 온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 에버랜드 내일 날씨 예보를 살펴보니 구름 표시다. 그동안 우리 동네만 비가 계속 온 건 아닐까. 달복이는 좋겠다. 내일 소풍 가서 신나게 놀겠네.




달복이의 가슴이 기쁨으로 철철 넘쳐흘렀다. 간식으로 새우깡 하나와 500미리 음료수 하나를 챙겼다. 용돈도 두둑하게 받아 가방에 챙겨 넣었다. 기쁨이 넘치다 못해 가슴에 풍선 하나를 채우고 하늘로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아침 새벽부터 출발해야 하니 제일 먼저 씻으러 들어갔다. 평소보다 일찍 씻고 나와 머리를 말리고 이불에 누웠다. 소록소록 잠이 들려는 찰나였을 거다. 욕실에 들어간 나는 괴성을 쏟아냈다.


“윤달복! 욕실 천장에 왜 물 뿌렸어! 정신이 있어 없어! “


쉬지 않고 울리는 소리는 욕실 벽을 치고 다시 천장을 울리며 내 귀와 복실이의 귀에 와 박혔다. 한 자락 바람 같은 소리의 일부는 닫힌 커튼 사이를 비집고 슬쩍 기어나갔다. 좁은 종소리 내부 같은 욕실 공간에서 ‘뎅뎅’ 거리던 내 목소리는 주방 복도와 같은 좁은 길을 지나, 거실 바닥을 웅웅 대며 지나가다 온 집안으로 퍼지더니 열린 문으로 나뉘어 들어갈 때는 더 작아졌다. 달복이가 설핏 잠든 안방으로 가기 위해 90도 방향을 홱 틀어버린 소리는 동물의 포효와 같은 느낌은 사라지고 그저 낮게 으르렁 거리는 소리로 바뀌어 달복이의 귀에 전달되었을 뿐.


아니면 달복이는 그 소리를 다 들었는 지도 모른다. ‘엄마가 또 뭐라고 하네. 뭔 소리지? 날 부르는 것 같은데, 복실이는 엄마 옆에서 정말 쫄았겠다. 복실아 힘내라. 엄마 목소리 옆에서 들으면 화통을 삶아 먹은 것처럼 엄청 큰데, 큭큭. 아 잠 온다. 빨리 자야지.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이렇게 복실이의 건승을 빌었을 지도.


물기 어린 욕실, 천장 위쪽 벽면까지 사방에 모두 물이 줄줄 흐른다. 이 쪽 벽을 보아도 저 쪽 벽을 보아도 문을 닫아 보아도. 대체 무슨 생각으로 욕실 전체에 물을 들이부었을까. 내가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씻으러 들어갔으니까 달복이는 30분 동안 욕실을 사용했다. 장장 30분! 평소에도 왜 그렇게 씻는 시간이 긴가 궁금했었는데, 이런 즐거운 물놀이를 즐겼는가 보았다. 내가 질러댄 소리는 벽을 만날 때마다 반사에 반사를 거듭하며 씻고 있던 복실이와 나의 귀에 와 박혔다.


복실이의 긴 머리를 헹궈주다 아이의 머리가 잡아당겨졌다. 복실이가 그런다.

“엄마 화나서 내 머리 잡아 당긴거지?”

나는 복실이에게 화가 난 게 아니다. 복실이는 옆에 있었을 뿐이고, 당연히 달복이에게 소리를 지른 것이다. 그러나 나의 화는 바로 옆에서 큰 소리를 듣고 있던 복실이에게 파도처럼 다쳐왔던 것이다. 그리고 감정의 기복이 고스란히 내 손으로 전해져 아이의 머리에까지 가 닿은 건지도 모른다. 복실이의 숭고한 희생으로 달복이는 무사했다.


내가 씻고 들어갔을 때 달복이는 이미 잠이 들어 있었다. 잠자는 아이의 얼굴은 평온하고 행복해 보였다. 혼자 잠이 들다니 신통방통하다.




새벽 5시 8분, 달복이가 벌떡 일어나 문으로 뛰어 나갔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시계를 확인하곤 말했다.

“밥 먹고 챙기려면 이제 일어나야 하지 않아?”

나보고 일어나란다. 밥을 달란다. 새벽 5시에. 큰 아이들은 새벽에 멀리 갈 땐 보통 밥을 안 먹었다. 일어나려고 막 일어나려던 참이란다, 아들아. 새벽에 새 밥을 했다. 계란 프라이를 하고 김치만두를 굽고 사과를 깎았다. 달복이는 잘 먹는다. 평소와 같은 아침처럼 느긋하다. 아니, 평소엔 감은 눈으로 밥을 물고 있는데. 그리고 아침 댓바람부터 멀리 놀러 가는 아들에게 차마 지난밤 물장난에 대해 벼락과 같은 잔소리를 해댈 수 없었다.


달복이는 밥을 먹으면서 물었다.

“엄마 오늘 방송하는 날인데, 제가 일찍 가니까 방송을 틀고 버스 타러 가야 할까요? ”

‘아이고 두야. ’

아이는 방송반이다. 방송이라 함은 학교 운동장으로 향하고 있는 스피커가 켜지는 것을 말한다. 평소 수요일이면 달복이가 일찍 가서 방송을 틀었다. 6시 30분부터 동네 사람들을 다 깨울 작정인가 보다. 나는 어른의 위엄을 갖춘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방송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야 하지 않을까?”

소통이 잘 안 되는 어린이 방송부다. (아침부터 카톡 대화방 알람이 또 열심히 울려대겠군)




달복이는 에버랜드에 간다. 그래서 그랬다. 욕실에 천장과 사방 벽타일에 물을 뿌려댄 건 그래서 그런 거다. 즐거움이 하늘까지 떠올라서. 달복이의 행복한 마음이 하늘까지 닿아서. 그런데 평소에도 달복이의 기쁨은 하늘까지 닿는다. 그게 문제다. 방방 뛰고 있는 마음 중에도 해야 하는 일에 대한 의무감이 들어있다니 기특하다고 해야 할까.


달복이가 출발했다. 내가 태워준다고 밥도 차려주고 옆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옷을 챙겨 입었다. 신발을 신고 나가면서 비가 안 온대도 우산을 챙기라는 아빠의 권유에 못 이겨 접이식 우산 하나를 챙겼다. 나는 버스 타고 가면 목이 아프니까 목 베개를 챙겨줬다. 새벽길 떠나는 아이의 손에는 음료수도 하나 들려 있었다. 손이 부족한데 그냥 큰 가방을 챙겨가라고 할 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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