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도 제한 시간이 필요하다

아들에게 배우는 체스

by 눈항아리

매일 체스판을 펼친다. 펼치기만 하면 마법과도 같이 시간이 흘러간다. 누구도 체스판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주력은 달복이와 복실이다. 처음에는 내가 달복이를 불러 체스 가르침을 청해야 했다.


내가 선수인데 늘 내 옆엔 딸아이 복실이가 붙어 있다. 나와 복실이를 합해도 달복이 하나에게 전력이 한참 부족하다. 복실이와 나는 상대가 인정하는 한 팀이 되었다. 복실이가 한 번 움직이고 내가 한 번 움직인다.


삼 대 일은 어떨까.


첫 시합 날이었다. 달복이는 검은 말, 우리는 흰말이다. 우리 팀이 꾸려졌다. 복실이와 나, 그리고 옆에서 아령을 들어 올리던 둘째 복이도 곁눈질로 거들었다. 셋이서 달복이 하나를 이겨보겠다고 힘을 냈다.


두 수 앞을 내다보지는 못했지만 한 수 앞을 내다보기 위해 우리 팀은 여섯 개의 눈으로 기물의 움직임을 예측했다. 느리지만 꼼꼼하게 참 오래 생각했다. 긴 시간 동안 달복이는 단 한 번의 재촉 없이 기다려줬다. 대견하고 끈기 있는 녀석이다. 허둥대는 셋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몇 수 앞을 내다보는 고수의 기운이 느껴졌다. 달복이는 조그만 쥐 세 마리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 같았다. 은근한 미소를 띠며 점잖게 앉아있는 모습은 나이 지긋한 삼촌 같았다.


체스 한 판이 한 시간 반 만에 끝났다. 퇴근 후 밤중 체스 게임으로 1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진이 다 빠졌다. 원래 이렇게 길게 해도 되는 걸까? 이러다 우리 망부석이 되는 거 아니야!


“체스는 시간제한 없는 거야? 왜 아무도 그만하자고 안 하는 거야?“


체스도 제한 시간이 있다고 했다. 주어진 시간을 다 쓰면 끝난다는 것이다. 어린이 게임은 30분이나 한 시간 정도로 정한다고 했다. 공식 대회는 90분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린이 게임이니까 앞으로 30분으로 정하면 되겠다.


그런데 그 시간은 개인에게 주어지는 시간을 말한다. 각자 선수에게 시간이 주어지는데 체스 말을 움직일 때 원하는 시간만큼 생각할 수 있다. 대신 시간을 다 써버릴 수 있으므로 속도 조절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 체크를 하는 체스용 시계가 있다고 하는데 얼른 주문해야겠다. 딱 30분만 하자고 해야지. 마음은 그래도 생각할 시간이 모자랄지 모르니 한 시간으로 하자고 해야 할까. 잠은 자야하고 얼렁뚱땅 말을 대충 움직여서 지기는 싫다. 시간은 아이들과 상의해서 상황에 맞게 정해야겠다.


체스 시계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달복이. 몸통 하나에 두 개의 시계가 들어있다. 시곗바늘이 있는 아날로그 방식이 멋져 보이는데 시합 중간에 잠깐 멈출 수 있는 전자시계가 좋겠다. 나는 체스를 두다 빨래를 널기도 하고 가스 불을 끄러 가기도 한다. 가게에서 체스 판이 벌어졌다며 메뉴를 하러 달려가기도 한다.


한쪽 선수가 시간을 다 써버리면 게임은 끝난다. 그런데 선수가 아닌 사람은 시간이 다 되었다고 말해주면 안 된단다. 모르고 지나가다가 심지어 둘 다 시간을 다 써버리면 무승부가 된다. 상대가 시간을 다 써버려도 내가 체크메이트 할 체스 말이 부족하면 무승부만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폰이 있다면 승리를 주장할 수 있다.


우리는 체스판을 펼친다. 이제 주력은 달복이와 복실이다. 옆에서 나와 복이가 돌아가며 복실이를 도와준다. 셋의 전력이 올라가고 있다. 달복이가 셋한테 못 당하는 것 같다. 초보도 매일 체스를 두면 똑똑해진다.


꼭 체스를 두는 선수가 아니라도 멀찍이서 체스 두는 걸 관망하는 것도 꽤 재미있다. 선수로 말을 움직일 때는 말 하나의 움직임에만 생각이 머무는데 멀리서 보면 왠지 내가 숲 전체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복실이의 하얀 말뿐 아니라 달복이의 까만 말이 움직이는 것도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복실이나 달복이에게 내가 발견한 걸 알려주면 내가 좀 똑똑한 것 같이 생각된다. 그런데 왜 하얀 말 앞에 서서 내가 선수 입장이 되면 그게 안 보이는지 모르겠다. 아직 초보라서?



가족 여섯 중 체스의 기본을 아는 자는 모두 넷. 체스 판을 펼치면 모두 집중한다. 매번 그렇다. 그것이 성과라면 성과다.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방학을 슬기롭게 잘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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