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명태>를 쓰고 있다
마크 쿨란스키 <COD>
나는 대구를 시켰는데 이것이 왔다.
COD는 대구란다.
명태도 대구과란다.
명태는 영어로 pollock, pollack 이다.
책에서 스치듯 지나간 한 마디에 궁금증이 일었다.
책에서 제시한 수수께끼 민족, 바스크인에 꽂힌 게 아니고.
인생이 어디로 튈지 예상할 수 없는 것처럼
책을 읽다 생각의 방향이 어디로 향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다.
궁금증이 무언고 하니,
내가 아는 핑크빛 몸과 지느러미를 가진 하얀 속살의 물고기 볼락은?
그건 그냥 한국인이 부르는 말이다.
우리가 아는 열기, 볼락은 영어로는 black rockfish라 부른다.
black rockfish도 그럼 대구과인가?
아니다. 양볼락과다.
볼락이냐 폴락이냐.
그 말이 그 말 아닐까?
영어가 잘못 전해져서 어종이 바뀌었을까?
아니다. 볼락은 순우리말이란다. 볼이 볼록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한국인이 쓰는 물고기 어종을 굳이 영어로 말할 필요는 없으니까.
‘블랙 락피쉬’라 말하지 않고 우리가 부르던 대로 볼락이라 말하는 거다.
명태를 갑자기 폴락이라고 부르면 얼마나 혼란스러웠겠는가.
그리고 우리는 명태에 권위가 있는 나라가 아니던가.
명태를 부르는 말이 무려 43개나 된다고 하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내가 아는 명태의 이름만 해도 많다.
생태, 동태, 명태, 북어, 황태, 먹태, 노가리, 코다리.
유럽에서 대구를 부르는 말도 무지 많다고 한다.
우리가 명태 말린 것을 북어라고 하는 것처럼
포르투갈인들은 염장 건대구를 바칼라우라고 한다.
나는 염장 건대구는 별로다.
너무 짜다.
북어는 소금 간을 안 해서 좋다.
물고기를 따라가는 역사 이야기를 읽으며 머리는 생선으로 가득 찼다.
타인, 과거의 사람이 잡았던 물고기가 아니라
내가 뼈를 발라 먹었던 생선 생각으로 가득 찼다.
독서의 효과다.
작가의 의도와는 하등 상관없이
내 속에서 재생산, 재창조, 새로운 요리로 재탄생하는 이상한 현상이다.
그 요리와 그 요리가 다른데 결국은 먹는 것에 꽂히고 말았다.
대구를 읽으며 명태 생각을 했고,
맛있는 생선 생각을 했고,
마트에서 파는 생선을 생각하다 수협 마트로 향했다.
그중 가장 손질하기 쉬워 보이는 고등어와 볼락을 사 왔다.
다 구워 먹겠다!
먹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가 생선 냄새의 위협을 넘어선 순간이었다.
그렇게 고등어 두 마리와 핑크빛 볼락 세 마리를 구워서 저녁 반찬으로 먹었다.
베네치아의 식당에서 서빙을 해주고 생선 뼈를 발라주던 직원이 된 것처럼
(베네치아 랜선 투어를 했음)
친절하게도 나는 아무런 불평 없이 재빠른 전문가의 손길로
생선의 몸통 중앙을 가로지르는 굵은 뼈를 발라내고
지느러미를 없애고
살결 사이에 박혀있는 잔 가시들을 제거해 식탁에 내놓았다.
온몸에 생선 비린내를 뒤집어쓰고도 생선가시를 무진장 많이 발라내고도
뿌듯한 저녁시간이었다.
책은 나를 살찌운다.
물고기의 역사라고 제발!
바스크인들이 쫓았던 대구를 찾아 다음번엔 꼭 세계사의 지평을 넓혀보자고.
대구 어장은 물론 대구를 가공하고 말리는 것까지,
그곳이 어디인지
사위도 며느리도 모르는 비밀 같은
기업 비밀로 간직해
경쟁력을 키우며 번성했던 바스크인들.
대체 어디까지 갔었냐고!
지명을 들어도 소용이 없다. 모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뉴펀들랜드 그곳이 어디인지 지도를 다시 펼쳐야겠다.
<대구>를 읽고 있다. 한 달 동안의 챌린지 독서 덕분에 <대구>를 만났다. 생선 생각이 가득 차서 오랜만에 생선 요리를 거하게 해 먹었다. 그리고 <대구> 덕분에 명태 생각이 났고 <명태> 글을 쓰고 있다.
독서의 파급효과는 대단하다. 자리를 마련해 준 라이브 독서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며칠은 생선 먹을 생각이 안 날 것 같다. 프라이팬을 밖에 내놨는데 이틀째 잊고 있었다. 그걸 씻어내려면 생선 비린내가 또 진동을 할 텐데... 생선을 좋아하는 나도 이제는 비린내라는 걸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