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가을 배추가 초록 잎을 겹겹이 둘러싸고 알이 단단하게 들어찰 때 배추 밭 시멘트 길로 운동을 나갔더랬다. 거뭇한 날개를 퍼득이며 날아오르고 삼삼오오 담장에 모여앉아 나를 가만히 관찰하는 까마귀 녀석들이 있었다.
나를 먹으려는 건가. 내 몸 어딘가에 먹을 구석이 있던가. 아니면 배추를 먹으려는가. 그 까만 짐승이 배추를? 잡식성이라니 먹을 수도 있겠지. 다 먹고 배가 불러 쉬는 중인가. 왜 사람을 보고 날지 않지? 참새보다 한참 커서 그런가. 겁 없는 새. 모이면 더욱 겁이 없는 까마귀.
비릿한 배추의 썩은 내와 바다 내음이 너른 들판을 달려 내 콧구멍 속으로 들어왔다. 배춧잎이 흙에 떨어지고 짓이겨져 자연으로 돌아가며 나는 물기 지지한 냄새다. 까마귀가 배추를 한 장 뜯어먹다 ‘퉤!’하고 뱉어버릴 만한 역한 냄새다. 시력에 많이 의존하는 까마귀는 사실 후각이 그리 예민하지 않다고 하니 배추밭 위를 비행하는 일이 그리 고역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 배추가 금배추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천지 사방 널린 신선한 야채를 뜯어먹고 밭고랑에 기어다니는 지렁이를 쪼아먹고 배춧잎에 살고 있는 애벌레를 커다란 부리로 골라 집어먹었겠지.
풀만 먹고살 수 없으니 곡식도 먹어야지. 노란 물결치며 곡식이 익어가니 벼 이삭을 훑어 먹으려는가. 다리로 선비처럼 고고하게 진흙 논을 밟아가며 산책하듯 먹이를 구하는 건 백로에게나 어울리는 모습인데. 느릿하게 다리를 꺾어 올려 한 발자국 내딛는 백로에게서 회색빛 카펫 위를 걷는 품위가 느껴지지. 까마귀가 진흙을 밟는 것이 상상이 되는가? 꾸물거리며 걷는 건 어울리지 않아. 까만 마귀 같은 애가 질퍽거리는 진흙 논바닥을 찰박거리며 걷는다니. 짧은 다리가 푹 빠지지 않을까? 통통하고 육중한 몸이 뻘밭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지도 몰라.
까마귀는 논두렁을 주시하다 풀숲으로 냅다 달리는 쥐를 한 마리 낚아채 날아오를 거야. 튄 핏빛 물기는 까만 부리와 깃털에 뭍혀 보이지 않지. 풀쩍 뛰는 개구리를 눈여겨봤다가 휙 잡아채기도 할 테지. 논에는 추수가 끝나고 바싹 마른 후에야 들어갈 수 있을 거야.
굴곡지고 단단하게 다물린 부리는 뭉툭하게 짧으나 위협적이지. 몸통은 윤기가 흐르는 벨벳 옷을 입을 듯 귀품이 넘쳐흘러. 사신의 날개 색깔의 날개를 펼치고 사납게 퍼득이면 얼마나 거대한지 몰라. 내 머리를 공격할까, 내 머리를 제 둥지로 착각하고 내려앉지는 않을까. 휑한 머리가 걱정되어 두 손으로 가려 보았지. 다음 산책길엔 까만 머리의 존재감을 옅게 할 커다란 모자를 써 볼까 생각했지. 까마귀의 활짝 펼친 날개보다 더 커다란 우산을 쓰고 나니는 건 어떨까.
그저 까마귀가 모여 앉아있으면 발걸음을 서둘렀다.
‘나는 침입자가 아니야. 가는 길 가는 거라고. 까마귀 신경 꺼.’
이렇게 몸으로 신호를 보내면서, 절대 나는 겁쟁이가 아니라고 굳게 생각하며, 뛰면 도망간다 생각할까 봐 종종걸음 치면서도 묵직하게 시멘트 도로를 최대한 느리게 통과하려고 갖은 애를 썼다.
출근길 차를 타고 지나갈 만나는 높은 전깃줄에 참새 마냥 앉은 두어 마리의 까마귀는 절대 도망가지 않아. 차를 무서워하지도 않아. 그냥 멀뚱히 쳐다보며 공중에 앉아 있지.
마르고 건조하고 푸석하고 모래바람 일어나는 겨울의 빈 밭에 모여 앉은 까마귀는 무어 먹을 게 있다고 날개를 접고 종종거리며 부리로 땅을 쪼아대는지. 지나가는 차는 아랑곳 않고 부리부리한 까만 눈으로 내 쪽을 흘겨 보고 있지. 제 할 일을 마저 하다 뭘 먹었는지, 자리를 옮기려는지 몇 걸음 걷다 날아올랐지.
달리는 차와 겨루듯 까만 날개를 펼쳐 영역을 수호하는 듯 낮은 비행술을 펼치기도 해. 내 자동차는 잽싸게 평소와 같은 속도로 도망을 쳤지. 까마귀 자체도 마귀 같아 무서워 보이는데 날개를 펼치면 그 위용이 드러나. 날개를 접고 있을 때 모르던 험악한 덩치가 압권이지. 압도적인 단단한 몸매하며 기세등등한 기운을 보면 내가 까마귀에게 무슨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해. 아마도 나는 까마귀 집 마당에 들어간 게 아니었을까. 나는 들판을 지나가고 있을 뿐이었고, 나는 들판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달리고 있었을 뿐인데 말이야.
말은 바로 해야지, 그 길은 공용 도로라고! 까마귀 내 말 알아 들어? 음험한 눈으로 쳐다보지 좀 말고, 동네 양아치들 뒷골목에 모여있듯 모여 다니지 말고, 내 앞에서 날개 퍼득이지 말란 말이야.
따지고 보면 우리 집 밭은 내 돈 주고 내가 경작하는 내 밭이라고. 거기서 벌레나 잡아먹는 주제에. 그 주제를 아는지 우리 집 텃밭에서만큼은 나를 존중해 주지. 내가 밭에 나가면 냉큼 전봇대 꼭대기에 올라가 버려. 날개는 절대 내 눈에 띄지 않도록 사리고 말이야. 내 몸이 마구 풍겨대는 고귀한 주인의 기세를 아는 것이지. 하하. 여기는 내 영역이라고.
나도 이곳에 터를 잡았고 까마귀도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 서로에게 위협적이지 않도록 까마귀야 잘 지내보자. 으르렁거리는 개 한 마리를 앞에 두고 살금살금 뒷걸음질로 피해 가는 것처럼 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까마귀를 대하지. 산책길에선 내가 피해 가도록 하지, 우리 집 밭에선 네가 좀 양보하도록 해.
자연과 나 사이에, 동물과 나 사이에 먼저 자리한 불안, 두려움, 무서움. 그것이 관심과 배려로 거듭날 때까지 실랑이해볼밖에.
레이첼 카슨의 <바닷바람을 맞으며>를 천천히 읽고 있다. 자연을 대하는 태도, 자세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봄의 비행’에 나온 수많은 새들을 보고 내가 아는 새를 표현해 보고 싶었다.
내가 새를 대하는 자세는? 지렁이와 곤충을 보듯, 역시나 무서움이 먼저였다. 내 위치와 상황을 확인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으니까.
그래서 유독 나를 위협한 존재, 까마귀에 대해 끄적여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