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로폼 도로를 점거하다

스티로폼에게 배운 삶

by 눈항아리
잠자리 도로를 질주하다>>

2024년 8월

공중 무단 횡단 현장을 목격했다.
오거리 교차로를 지나는 잠자리
도로를 지나는 그는 힘에 겹다.
인도로 돌아 횡단보도로 건너기는 힘에 부쳤을지도
태양빛이 내리쬐어 그런가
고도를 높이기 쉽지 않다
잠자리는 왜 높이 날지 않을까
신호등에 맞춰 오가는 차들을 아슬하게 피해
자꾸 고도를 낮춘다.
그가 길을 교차로를 무단횡단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눈을 뗄 수 없었다.

<반짝반짝 소소한 일상>매거진을 만들며 두 번째로 올린 글 ‘잠자리 도로를 질주하다’라는 제목의 글이다.





잠자리가 오거리 도로를 날며 자동차를 아슬아슬 피해 가는 모습이 눈에 밟혀 쓴 글이다. 그 위태로운 모습이 나를 닮은 듯 우리를 닮은 듯 인간의 모습을 닮은 듯했다.



출퇴근 길 매일 지나다니는 길이지만 매일 무언가가 눈에 들어오는 건 아니다. 빠른 속도를 줄이지 못해 중앙선을 넘어 아슬아슬하게 핸들을 꺾어 오는 차량은 매일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좀 느긋하게 살 일이지. 그러나 깜빡하면 초록불이 빨간불로 바뀌니 길을 재촉하는 수밖에 없다. 신호가 바뀌면 90초가 넘도록 제자리에서 동동거리며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속력을 높여서 부앙~!



웬일로 차들이 달리다 멈칫한다. 오거리 분주한 도로에서! 곧이어 쿵 하고 푸석거리는 소리가 난다. 또 한 번 멈칫하고 핸들을 살짝 꺾기도 하고 다시 달리는 자동차들.



차량이 질주하는 오거리 도로에 하얀 스티로폼 박스가 사뿐히 내려앉았다. 오거리 중심을 달리는 차들은 간만에 신선한 사물을 만났다. 누군가 차에서 떨어뜨린 것이 분명해 보이는 박스, 밤새 누군가 걸어서 오거리 중심에 두고 오지는 않았을 테다. 아니면 바람이 아무도 몰래 데려다 놓았나.


박스에게 발을 달아준 것이 누구든 지금 이 순간 현재 위치가 중요하다. 스티로폼 박스는 제가 존재하는 곳이 어디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오거리 한복판 도로 위에 당당히 서 있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한 점 부스러기 없이 온전한 상태로 있었다. 겉모양은 멀쩡했으나 그 속이 온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가끔 정신을 놓은 사람들이 도로 중앙선을 밟으며 걷는 아찔한 장면을 목격하곤 한다. 그런 정신 줄 놓은 사람도 차들이 질주하는 오거리 도로 중앙에 서 있기는 힘들다. 스티로폼 박스는 정신을 놓은 것이 아니라 놓을 정신이 없는 것이다. 의식이 없는 사물, 아니면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 오거리 도로 중앙에 서 있게 되었다.



살려줘.

도와줘.

누가 좀 꺼내줘.

소리 없는 외침.

그저 두리번 거리며 서 있다.

하지만

그도 안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허공을 울리는 외로운 절규라는 걸.



차들은 멈추었다 방향을 살짝 틀어 지나갔다. 잘 가는듯하더니 차 뒤꽁무니로 ‘퍽’하니 치고 도망간다. 스티로폼이 부서지며 하얀 파편이 되어 날린다. 다음 차도 마찬가지다. 커다란 스티로폼 몸체 앞에서 긴장하던 차들이 차량 앞을 들이밀고 지나가면 뒷발길질하듯 뻥 차버린다. 차에 발이 달려 그러겠는가, 자동차가 달리며 뒤로 내뿜는 거센 바람에 연약한 스티로폼 조각이 날리는 것이다.


이리저리 치이고 부딪치고 산산이 부서지면서도 기쁜 듯 보인다. 한 곳에 맴돌듯 머물러 있는 것에 불만이었던 것일까. 온갖 집중을 받고 있으니 영 불편했던 심기가 바람결에 날리며 부서지니 속이 후련한 것 같았다. 제 몸을 부수면서 시원한 속이라니. 스스로 망가뜨리는 건 아니니 괜찮은가. 그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 스스로를 포기했다 할 수 있나. 제 발로, 제 의지로 서지 않았으니 스스로를 탓하지 않아서 그런가.


부서지는 이보다 되려 부수는 이가 불편한 상황.


가볍지만 존재감만은 막강한 스티로폼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커다란 덩치의 강철 자동차. 연약한 것을 산산이 짓밟고 제 한 몸에 작은 상처가 날까 걱정하는 비겁한 몸부림이라니. 그러고도 멈춰 서지 않고 쌩하고 달아나는 꼴이라니.



멈추지 않는 것이 아니라 뒤따라오는 무수한 자동차 때문에 그저 달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 것이겠지. 오거리 도로에 설 수는 없으니까. 이것저것 다 따져도 부서진 건 하얀 스티로폼 하나. 쪼개져 흩날리는 햐얀 부스러기. 방울방울 뒤따르는 바람에 실려 동쪽으로 달리다, 바뀐 신호에 남으로 달리다 북으로 달리다 허공을 맴돌고 솟구치다, 어느 보도블록 구석에 처박히고, 구부러진 철판 구멍 숭숭 뚫린 하수구로 푹 꺼졌다.


본래의 몸은 여전히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었다. 누구에게 구출되었을까. 누군가 소리를 들었을까. 선한 바람이 길가 언저리에 데려다 놓은 걸 대형 버스 바람에 휙 떠밀려 자신도 어느 누구도 모르는 곳으로 날려갔을 지도.


쓰레기라 규정되어 지나가는 청소부가 주웠다면 좀 괜찮아질까. 흩어지고 사라진 몸은 영영 찾을 수 없겠지만.


의미를 가지고 쓰임을 가지고 태어나 쓸모를 다하고 버려진 어쩌면 탈출한 존재. 아무런 의식 없이, 존재하는 곳이 어디인지 모른 채, 휘둘리는 삶이란 그렇게 애처롭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정의되고 규정되고 의미가 주어진다고 좋은 건 또 아닌 것도 같다..


신중하게 생각해, 네가 설자리를 찾아, 의식을 가지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


오거리 도로 위를 홀가분하게 나는 스티로폼 조각이 나에게 말했다.



어느 여름날 오거리 도로 위를 위태롭게 날던 잠자리가 생각났다. 높이 날지 못하는 잠자리가 자동차를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모습이 생각났다. 자동차는 몰랐다. 잠자리가 지붕 위로 날아가는지 어쩐지. 최선을 다해 자동차보다 높이 날려고 하는지 어쩐지. 자동차가 일으키는 바람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죽기 살기로 허공에서 발버둥 치는지 어쩐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스티로폼 박스는 어떤가. 비록 도로 위에 떨어져 차에 치이고 부서지고 짓이겨지기는 하였으나, 그 존재감만은 잠자리와 비교할 수 없이 크다 하겠다. 스티로폼을 기억하고 위해주는 이 하나 없었으나 세상을 향해 그 존재의 거대함을 알렸으니 잠자리의 질주에 비하면 썩 나쁘지 않은 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잠자리와 스티로폼은 내게 말했지.


혼자 끙끙 앓지 마, 외치라고, 그게 어디든 내가 여기 있다고, 몸부림이라도 치라고.


스티로롬에게 배운

삶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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