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가 뭐죠?
어릴 적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에는 2인조 세탁기가 있었다. 세탁조와 탈수조가 정확하게 나뉘어 있는 2인조 세탁기였다.
한쪽은 세탁만을, 다른 한쪽은 탈수만을 했다. 탈수만 되는 기계도 따로 있었는데 짤순이라 불렀다. 세탁과 탈수가 하나로 합체된 때가 언제인지 나는 모른다. 어느 날 문득 통 하나로 세탁과 탈수가 가능해졌다.
세탁기의 문은 2인일 때도, 1인조 일 때도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위에 달린 문 때문에 세탁기가 커지고 높아지면서 짧은 다리로 낑낑거리며 빨래를 꺼내곤 했다. 세탁기에 거꾸로 처박히지는 않을까 걱정하랴 얼마나 애로사항이 많았던가.
그나저나 내가 아는 한 세탁기는 2인조에서 진화한 1인조 통돌이 세탁기가 전부였다.
세월은 변하고 세탁기도 다양해졌다. 이제는 옆에 뚜껑이 달린 드럼 세탁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키 작은 나 같은 사람을 위한 배려일까.
우리도 이사를 하면서 통돌이 세탁기에서 드럼 세탁기로 바꿨다. 그리고 세탁기와 같은 모양의 건조기를 들여놨다. 일체형은 아니지만 세탁기와 건조기는 붙어있다. 1층엔 세탁기, 2층은 건조기다.
세탁기가 1층에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을 배출해야 하니 아래쪽에 있는 것이 좋은 것이다. 물의 무게까지 더하면 무거우니 아래쪽에 놓는 것이 더 나은 것일까. 굳이 건조기를 1층에 놓고 2층에 세탁기를 놓을 필요는 없다. 세탁기는 1층, 건조기는 2층. 당연하게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누구나 다 아는 건 아니었다. 어린 내가 드럼 세탁기의 존재를 생각지도 못했던 것처럼 어린 내 아들도 세탁기에 대해 무지하다. 아들이 세탁기가 뭐냐고 물었다. 6학년이 되는 아들의 물음에 허허 웃음을 흘렸다.
참고로 생활 교육에 철저한 나는 아이들에게 세탁과 빨래 정리, 집안 정리 등을 차근히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6학년씩이나 되는 아들이 세탁기를 모른다니!
문제는 너무 차근히 가르치다 보니 첫째, 둘째에게 치우쳐서 셋째에게 그 가르침이 전달되지 못한 데 있다.
처음으로 셋째 아들에게 색깔 옷을 세탁기에 넣어달라고 부탁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엄마 세탁기가 뭐죠?”
색깔 옷과 흰 옷을 구분하는 것이 까다롭다면 그러려니 하겠다. 유치원 생도 아는 세탁기를 초 6이 모른다니 말이 되느냐 말이다.
그런데 넷째는 한 술 더 뜬다.
“엄마 베란다에 있는 거 둘 다 세탁기 아녜요?”
셋째에 이어 넷째도 세탁기를 모른다. 세상에나! 건조기의 존재는 더더욱 모른다니 세상에나. 아이들에게 전수한 10년 생활 교육의 세월이 도로아미타불이 된 것만 같았다. ‘리셋’ 버튼을 누른 것 같이 다시 시작. 세팅을 새로 하고 처음부터 무의 상태에서 하나씩 다시 가르쳐야 한다니 기가 막혔다.
둘째 아들 녀석에게 세탁기와 건조기 버튼 누르기 등을 어렵사리 가르쳤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세탁기에서 빨래 꺼내 건조기에 넣으랬더니 꺼내서 잘 넣기만 했었다. 새벽에 열린 건조기 속의 젖은 교복 빨래를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었던가.
그 어려운 세탁 교육을 다시 해야 한다니!
”네가 동생들 교육 좀 잘 시켜봐. “ 큰 아들 복동이에게 넌지시 말했다.
”나는 이제 은퇴해야지. 복이한테 가르치라고 해요. “ 복동이가 싫단다.
둘째 복이는 아직 동생들 가르칠 깜냥이 안 되니 더욱 기가 막히다.
가정 속에서 배움은 대를 거쳐 내려가고 나이 든 사람에게서 나이 어린 사람에게로 자연스럽게 전수되는 것이 옳다. 그러나 전수가 안 되면 자연스럽게 전해질 때까지 내 손발과 입이 고생해야지 별 수 있나.
그저 황당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