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야식 주범 정신 차리다
단념을 하니 편하다. 먹을까 말까 사이에서 망설이지 않는다.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밤이다.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다만 늦은 밤이 되면 점점 배가 고파온다.
잠자리에 누워서 복실이와 둘이 소곤소곤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배고픔 모녀의 애틋한 이야기다.
“엄마 배고파.”
“복실아, 엄마도 배고파. 우리 빨리 자고 일찍 일어나서 먹자.”
우리는 주린 배를 붙잡고 금세 잠이 들었다.
복이는 집에 오자마자 플레인 스콘 두 조각을 먹었다. 식탁 위아래에 부스러기를 솔솔 뿌려놓고 운동을 하러 간다고 했다. 밤 11시에. 혼자 야식 먹는 복이를 보고 복실이가 물었다.
“엄마 오빠는 왜 먹는데도 살이 안 쪄요?”
가로, 세로, 다리 길이까지 체형 자체가 나와 다른 복이. 선천적인 거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나 대신 빼빼 오빠 복이가 말했다.
“나는 먹고 운동하잖아. 너는 운동하냐?”
“나도 가끔 자전거 탄다 뭐.”복실이는 억울함을 담아 말했다.
“20분씩 타서는 살이 안 빠져. 자전거 탈 때 30분 정도는 준비운동이야.” 운동 좀 하는 복이의 마무리 말씀이다.
배가 고프다는 내 말에 복이가 하나 먹으라고 했다.
“나 야식 안 먹어.”
야식을 안 먹어도 툭 튀어나온 배를 문지르며 내가 말했다.
복이는 그런 내 얼굴을 보고, 시선을 내려 내 배를 보고 ‘하하하’ 웃었다. 사악한 표정을 가진 악마의 웃음이었다.
“운동을 하세요.” 내 아들 얼굴이 짙은 피에로 분장을 한 ‘조커’ 모습 같았다.
“30분이 워밍업이라면서?”
나는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는 아주 뻔한 핑계를 댔다. 하루 1시간에서 2시간 운동을 하는 아들이 이해 못 할 말이다.
그러나 나도 계획이 있다. 어설픈 계획, 무얼 하는 계획이 아니라 무얼 안 하는 계획. 하는 것이 진취적이라면, 안 하는 건 정적이라 생각했는데 꼭 그런 건 아니다. 안 하고, 참고, 단념하고, 방황하고 고민하는 수많은 광풍이 마음속에서 몰아친다. 역동적인 커다란 바다를 내 마음속에 넣어둔 것 같다. 미지의 바닷속에서 하는 일 없이 허우적거리다 꼬르륵꼬르륵 소리를 듣는다. 꼬르륵은 바닷속에 가라앉는 소리가 아니다. 배 주린 소리다. 밤중에 듣는 배고픈 소리는 참 기분이 좋긴 하다. 살 빠지는 소리 같다. 은근히 즐기고 있는 나.
야식 안 먹은 지 9일 차.
매일 몸무게를 잰다.
내 몸이 가장 무거운 밤 시간에 잰다.
야식을 참는 것만으로 2킬로그램 감량했다.
운동과는 전혀 상관없는 살 빼기 작전, 성공적이다.
그런데 애초에 내가 살을 빼겠다고 시작한 건가? 맞다. 뱃살이 가장 문제 이긴 했다. 야식 참기 전에 많이 먹기는 먹었다. 야식을 뺀 만큼 살이 빠진 거겠지? 야식 살이 빠지고 나면 움직이지 않을 체중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잠시 인내의 결과를 즐기는 것도 괜찮겠지. 훗.
볼살이 쏙 빠졌고 턱이 뾰족해졌다.
아침에 눈두덩이가 붓는 일이 없어졌다.
아침에 손가락이 퉁퉁 붓는 일도 없었다.
살 빠졌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이건 가끔 보는 사람들이 으레 하는 인사치레일 수도 있다.
그걸 알지만 기분이 좋다.
아쉬운 점은 없을까? 물론 있다. 그동안 라면 한 번을 못 먹었다. 라면을 안 좋아하는데 그 라면이 먹고 싶다. 야식 단골 메뉴여서 먹고 싶은 건지, 아들이 끓여주는 라면이라서 먹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낮에 먹으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는데 아직 못 먹었다. 남편은 라면을 참고 있는데 둘이 밥을 먹으면서 그 앞에서 후루룩 거리며 먹을 수 없었다.
야식을 안 먹으며 바뀐 일상의 모습은?
밤 중에 설거지가 안 쌓인다. 둘째 아들 복이 빼고는 누구도 나서서 밤중에 먹겠다는 사람이 없다. 나의 음주시간이 사라졌다. 간식비가 확 줄었다. 식사를 맛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성을 듬뿍 쏟는다. 먹는 횟수가 줄어든 만큼 한번 먹을 때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맛없게 많이 먹고 배가 부르면 기분이 나쁘다. 적게 먹어도 맛있게 먹고 싶다.
가족들의 반응은?
둘째 복이는 여전히 개인플레이 중이다. 혼자 먹고 운동한다. 너무 빼빼 말라서 먹지 말라고 못한다. 닭가슴살을 스스로 사 먹으며 운동하는 녀석이니 말해 무엇하랴. 멋진 아들 녀석이다.
첫째 복동이는 개학 후 적응 기간을 보내며 간식이 확 늘었다. 야식도 덩달아 늘었다. 그러다 어제저녁에는 딸기 후식을 사양했다. 밤에 먹는 걸 줄여보겠다고 했다. 남편과 나의 영향력이 이렇게 직접적이고 빠르다. 그런데 청소년 시기에 많이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침과 저녁밥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
셋째 달복이는 먹는 취미가 없다.
넷째 복실이는 잘 따라와 주고 있다.
남편은 야식 안 먹기를 가장 먼저 시작했다. 의지가 굳건한 사람이다.
중요한 건 식탁에 음식을 차려놓지 않는 거다. 요주의 인물이 바로 나였다. 그 손이 멈춰졌으니 다행이다. 가정이라는 좁은 사회에서 주고받는 영향력이 지대한데 나는 생각지 않고 마구 먹어댔다. 가족에게 미칠 파급력에 대해 생각도 못 해봤다. 그저 밤중에 먹는 것이 즐거웠던 거다. 입이 즐거웠던 거다.
그런데 하루의 끝 그 야밤에 다 같이 둘러앉아 수다 떨면서 과자를 먹으면 좋긴 좋았다. 아들이 라면을 끓여주고 전자레인지가 돌아가고 얼마나 북적북적했던가. 아~ 야식이여! 이런 뇌의 작용은 야식을 부르는 사악한 악마의 주술 찌꺼기 같은 거다. 미련을 갖지 말자. 밤이 아니라 낮에 다 함께 둘러앉아 오손도손 먹으면 될 것 아닌가. 주말 낮에 과자파티라도 할까. 애들이랑 뭐 맛있는 거 만들어 먹을까?
먹는다는 건(그게 야식일지라도) 맛을 느끼고 배부른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이라 기쁜 추억과 행복한 기억들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가족의 기억을 공유하는 ‘먹기’. 따뜻하고 건강한 기억으로 모두의 마음속에 남도록 만들어 봐야겠다. 야식을 주도하던 내가 이런 기특한 생각을 다 한다.
<야식을 참아라, 딱 100일만>은 초등 딸아이 복실이와 함께하는 야식 참기 프로젝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