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가을 내 차로 당당히 입주한 거미 한 마리.
그 녀석의 주요 출현 장소로는
운전석이 으뜸이다.
숨기 좋아 그런지 어쩐지.
따뜻해서 그런지 어쩐지.
천적으로부터 안전해서 그런지,
사실은 탈출을 못해서 강제로 감금당한 건 아닌지.
왼쪽 틈바구니에서 기어 나와
운전석을 차지한 나를 한참 노려보고선
휘젓는 내 손짓에 달아나던 녀석이다.
그 녀석이 영하 10도의 추위에 얼어 죽을 줄 알았다.
당연한 것 아닌가.
벌레가 동굴에서 겨울잠을 자지는 않겠지 설마.
어느 귀퉁이, 어느 틈새에 숨어있다 콱 죽어버린 줄 알고 얼마나 속이 시원했는지.
갇힌 공간에서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을
한 생명의 마지막을 애도하며
한편으로 나는
사악하고 악랄한 악마의 마음을 거미에게 품었다.
겨울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생명이 꿈틀거리지 않고
날벌레도 없고 기어 다니는 벌레도 없고
줄을 타고 다니는 벌레도, 뛰어다니는 벌레도 없다.
귓가에서 앵앵거리는 벌레 또한 없다.
그렇게 마음 푹 놓고 지내기를 몇 달.
꿈같은 시간이었다.
겨울의 장막을 깨부수고
목련이 피던 어느 날
녀석이 기어 나왔다.
운전석 위쪽, 내 머리통 앞쪽, 이마 중앙으로 슬금슬금 줄을 타고 내려왔다.
녀석이 나를 골탕 먹이기 좋아하는 출몰지역이다.
소리를 질러대고 난리 부루스를 췄지만 머리를 움직일 수도, 손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나는 운전 중이었고 차는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소리에 놀란 네 명의 아이들이 난리가 났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늘 그렇다.
지난가을에 차에 거미가 출현했을 때 펼쳐지던 것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야단법석.
다행히 거미의 귀가 먹은 것은 아닌지
우리의 바람이 실린 소리의 파동에 기가 질렸는지
느릿하게 올라가 숨어 버렸다.
봄이다. 만물이 소생하고 꽃이 피고 만발하는 봄.
그 봄을 맞아 거미가 소생하고 알을 낳고 새끼를 치는 걸까.
차를 탈 때마다 거미가 반갑다며 인사했다.
운전석 앞쪽 핸들 위로 펼쳐진 광활한 유리 벌판으로 기어 나와 아침 햇볕을 쬐고,
머리통 위에서 은근슬쩍 줄타기를 하고,
재빠른 발놀림으로 구석에서 나왔다 들어간다.
남편이 운전석에 앉은 어느 날이었다.
나는 불끈 용기를 냈다.
평소에는 운전을 하던 내 손이 조수석에서는 자유로웠으니까.
무기 또한 준비되어 있었다.
차에 기거하고 있는 또 하나의 존재 <나이 미카엘>.
몇 장 읽다 차에 방치되어 거미와 함께 가을과 겨울을 함께 보낸 책이다.
가벼운 <나의 미카엘>을 쥐고 창문에 나타난 녀석을 향해 가볍게 스윙을 했다.
책과 유리창 사이에서
녀석은 짜부라졌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졌다.
<나의 미카엘> 장하다.
호리호리한 몸으로 큰일을 해냈다.
칭찬의 미소를 구겨진 얼굴 사이에서 짧게 지어 보였다.
책을 재빨리 치워야 했기 때문이다.
남편이 운전을 해야 하니까.
앞 유리에 붙은 거미 녀석의 형체는 희끄무레하게 번져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남편은 그 자취가 눈에 거슬리는지 얼른 닦아달라고 했다.
그건 정말 하기 싫은 일이었다.
나는 팔이 아파서 높이 올릴 수가 없어.
앓는 소리를 했다.
거미가 유리창에 굳어버리기 전에 빨리 닦으라고 한 번 더 재촉했다.
나는 용기를 다했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남편이 유리창을 닦았다.
창에는 거미의 자취가 진하게 남았다.
내 차에 거미가 산다.
책은 언제나 유용하다.
인테리어, 호신용으로 비치함이 옳다.
벌레의 시체는 되도록 빨리 치워야 한다.
흔적을 지우기 위해 물티슈를 챙겨야겠다.
벌레 글은 써야 한다.
무서움을 글로 풀어내면 공포스러웠던 현장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다.
거미도 살아있는 존재이고 따뜻한 햇살을 쬐고 싶어 하는 걸 알 수 있다.
고단한 삶을 침범한 존재가 거미에게는 나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볼 수도 있다.
무참히 밟아버린 생명에 대한 작은 미안함을 표현할 수도 있다.
그 미안함 한 조각도 마음속에 남아있다.
그러나 다시 거미를 마주한다 해도 나는 <나의 미카엘>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