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식을 참아라, 딱 100일만

37 당당히 야식을 먹었다

by 눈항아리

언제 과식을 하게 되는지, 언제 먹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지, 왜 더 먹게 되는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밥이 없었다. 2시간에 걸쳐 음식을 했는데 밥 다섯 그릇을 푸고 나니 내 밥이 없었다. 진즉에 밥통을 열어 볼 것을, 늘 그런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 마트를 여럿 두고도 햇반을 누군가에게 사다 달라고도 못한다. 다른 가족들이 미안해할까 봐 그런다. 다른 식구들이 돌아가며 밥을 먹었다. 새 밥을 안치는 동안 모자란 밥이 사무쳤다. 그런 날은 과식을 하게 된다


견과류를 통으로 가져다 놓는 날엔 많이 먹는다. 견과류 뿐만 아니라 과자도 박스로 사놓으면 그런다. 대용량은 절대 눈에 띄는 곳에 놓으면 안 된다. 작은 항아리에 덜어 먹었다. 작은 항아리가 너무 크다.


소시지를 안 보이게 감춰놨던 게 생각났다. 찾아서 먹고 싶다. 먹을까? 소시지와의 거리는 스무 걸음, 문 두 개를 열고 가야 한다. 금방 손에 닿지 않는데도 기분이 좋다.


나는 먹는 걸 참 좋아한다. 결론은 아름답다. 애써 욕심이나 탐욕이나 식탐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했다. 좋아한다는 건 긍정적인 현상인데 왜 나는 그동안 눈에 불을 켜고 경계했을까.



좋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야식을 먹었다.


12시가 넘으면 생일이었고 축하의 치킨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맥주가 도착했다. 스스럼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죄의식이라고는 일도 없이 맥주 캔을 땄다. 행복한 밤이었다. 37일 만의 만찬이었다.


창고에 보관해 놨던 캔 맥주는 미지근했다. 기름 좌르르 흐르는 치킨은 짭조름하고 살결이 부드러웠다. 먹는 행위는 고귀했고, 그동안 못 먹은 날들을 위로했다. 어느 곳의 누구인지 모르는 작은 식탁을 마련해 준 모든 존재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했다.


배는 아침이 되어도 꺼지지 않았다.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부른 배를 탓하지 말고, 먹어댄 나를 벌하지 않기로 했다.


어제의 언어 ‘당당히 먹겠다’는 진정으로 야식을 먹겠다는 다짐은 아니었다. 그런 말을 내뱉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야식을 먹은 걸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야식 참기를 하는 동시에 음식을 대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니까.


어제는 실패했으나 오늘부터는 다시 야식 참기 돌입!


오늘의 진심을 다해 음식을 사랑하자. 먹는 행위 또한 아름다운 일이다.


그럼 남겨진 배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문제는 미적거리지 말자. 운동하자. 파이팅! 뱃살을 줄여야 맛있게 더 먹을 수 있지 않겠는가.


결국은 많이 먹는 방향으로 간다. 어째 좀 위험하다. 벼랑 끝으로 나를 내모는 것 같은 아슬아슬한 느낌이다.


인생은 원래 외줄 타기처럼 아슬아슬한 것이다. 괜찮다. 넘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받아들이자. 넘어지기 전에 다시 몸의 균형을 잡으면 되는 거다. 흔들리는 마음을 인정하고 중심을 잡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비로소 나는 줄 위에 서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삶에게 휘둘릴 준비가 된 것 같다. 삶이라고 거창하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 먹는 것이라고 말해도 된다. 소소하지만 삶을 이끌어간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먹는 것이 나에게는 결코 소소하지만은 않다. 그건 큰 일이다. 어찌 보면 큰 일을 해내고 있는 나를 칭찬하고 있는 중이다.



계속 칭찬 중. 비꼼 아님.

그래 야식을 37일 만에 먹었으니 장한 일을 했다. 약속을 깨버렸다. 장하다. 그러나 다시 일어나야 한다. 얼굴에 능청스러운 가면 하나를 끼고 다시 오늘을 살아가야 한다. 도대체 몇 개의 얼굴이 있는 건지 당최 알 수 없다. 외줄을 타더니 가면극까지 할 참이다. 극단을 하나 운영해도 되겠다. 나는 역시 대단한 사람이다. 능력이 출중하다. 뭘 해도 될 사람. 맘껏 자화자찬을 해도 된다. 오늘은 생일이니까. 생일이 뭐라고.


점심을 거하게 먹으려면 얼른 배를 꺼뜨려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야식을 참아라, 딱 100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