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당당히 먹겠다
야식은 안 먹는다.
딱 끊을 수 있다.
문제는 다른 음식이다.
대신 먹고
낮에 더 먹고
배부르게 먹고
맛있게 골라 먹고
마구 먹는다.
간식을 딱 끊을 수도 없고
밥을 안 먹을 수도 없고
단것, 짠 것, 매운 것,
튀긴 것, 밀가루가 안 좋다는 건 알지만
그걸 안 먹고살 수가 있나.
줄이는 방향으로
관리하는 방향으로
건강하게 먹는 방향으로
잘 인도해 보자 마음먹고 있다.
간식을 줄여 볼까.
눈에 보이는 간식은 손이 가게 마련이다.
또 사 들여오는 간식.
내가 아니어도 남편, 아이들이 음식을 나른다.
믹스 견과 두 통은 일 플러스 일이라나 뭐라나.
배달 트럭을 타고 문 앞에서 받았다.
아이들이 잘 먹어서 또 샀다나 뭐라나.
통은 또 얼마나 큰 지 두 손이 한꺼번에 들어간다.
크다고 많이 들었다고 툴툴거리면서
나는 한편으로 좋아한다.
견과류 킬러인 나는 당당하게 뚜껑을 열었다.
왼손 가득 견과를 퍼담아 놓고
빈손이 되도록 쉬지 않고 집어먹었다.
견과류는 활기 돋는 음식이니 나에게 딱이라며
봄나물만큼이나 좋은 음식이라 세뇌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기는!
한 움큼만 먹으면 인간적이지 않단다.
한 번 주면 정이 없단다.
그렇게 친절하게 내가 나에게 말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 손은
다시금 믹스 견과 거대한 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염치도 뭣도 없이 뱃속은 걱정도 안 되는가 보았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견과류를 좋아하는 가족들이 모두 드나들며
빨간 뚜껑을 열고 닫고
그릇에 담고 컵에 나누어 담았다.
커다란 원형의 플라스틱 통은 몇 시간 만에
투명 창으로 밖을 내다볼 수 있게 되었다.
다수의 힘으로 우리는 해냈다!
이게 아닌데,
배급을 해야 할까.
먹는 것은
내 입으로 들어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인데,
가족과 주변인과 환경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 고리를 끊을 수도 없다.
혼자라고 해서 먹는 걸 잘 참을 수 있는 건 더더욱 아니다.
혼자 먹으면 맛있고,
둘이면 더 좋고,
여럿이면 잔치를 하게 된다.
있으니 먹는다.
없으면 찾아 먹는다.
배고프면 구해 먹는다.
배고프지 않아도 그냥 먹는다.
차 한 잔이라도 옆에 갖다 놓고 홀짝여야 편안하다.
욕구는 끝이 없다.
없애도 또 생긴다.
참으면 병 된다.
병이 되면 더 갈망하게 된다.
욕망은 불타 오른다.
찬물을 뿌려도 죽지 않는다.
욕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어디서든 살아남아
언제 그랬냐는 듯 타오른다.
먹는 욕구는 자연스러운 거다.
태곳적부터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먹는 나를 탓하는 걸까.
태어날 적부터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인데?
왜 배부른 나를 탓하고 있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인 양.
그저 배 부르게 먹는 게 몸에 안 좋다는 걸 알아챘을 뿐인데
왜 먹은 내가 나쁜 인간이 된 것인 양 비난받아야 하는 거지?
그러니 나는 당당히 먹겠다.
대신
배는 안 나오고
더부룩하지 않고
소화가 잘 되고
입을 만족시키고
건강에도 좋으면서도
매일 먹어도 부담 없는 음식으로
골라서 먹겠다.
과식하지 않는 선에서
즐겁게 먹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먹는 나를 탓하지 말자.
나는 당당한 욕구를 표현하는 거다.
많이 먹어서 배부르다면 조절하면 될 일이다.
많이 먹었다면 이유가 있을 텐데.
이유를 물어나 봤나?
내일부터는 언제 먹고 싶은지.
뭘 잘 먹었는지.
왜 많이 먹었는지.
찬찬히 관찰해 봐야겠다.
당당히 먹겠다.
그렇다고 야식을 먹겠다는 건 절대 아니다.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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