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트 잎 토옥 따다

by 눈항아리

남향인 가게 마당에서 잡초처럼 막 자라나는 애플민트는 해를 좋아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흔들어주면 청량한 사과향이 향긋하게 올라온다. 잎을 잘라 카페 음료 데코로 사용할 수 있는 고마운 허브다.


뿌리와 같은 줄기가 땅 얕은 곳으로 기어가며 자라다 튼튼하게 뿌리를 박았다 싶으면 삐죽 초록 줄기와 잎을 하늘을 향해 내민다. 천천히 마당을 향해 뻗어나가는 애플 민트의 번식력은 대단하다. 하늘을 향해 위로도 쑥쑥 잘 자란다. 추운 겨울 땅 속에서 잠시 웅크리고 있다 봄이 되면 다시 씩씩하게 올라오는 놀라운 녀석이다.


화분에 옮겨심기해 겨울을 나기도 했지만 실내에서는 영 맥을 못 춘다. 식물 키우기에는 영 소질이 없어서일까. 실내보다 바깥 마당에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자연바람 쐬며 비바람 맞고 큰 녀석들이 튼튼하다. 영양제 하나 안 줘도 잡초처럼 쑥쑥 잘 자라서 머리 잘라주기 바쁘다. 가게 앞을 차지하고 있는 녀석이라 키 맞춰 예쁘게 잘라줘야 한다. 잘라주면 더 풍성해진다. 순을 자르면 줄기 두 개가 나오는 신기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음료에 올리는 연한 잎을 사용하려면 계속 잘라줘야 한다. 안 그러면 줄기가 두툼해지고 질겨진다. 줄기가 튼튼해지면 민트에게는 좋겠지만 손으로 ‘토옥’ 딸 수 없다.



한 해 겨울은 유난히 따뜻해 밖에서 초록 잎이 난 채로 겨울나기를 했다. 그해 겨울에는 겨우내 파릇파릇한 초록잎 고명을 음료에 올렸다.


음식은 눈으로도 먹는다. 음료에 초록잎이 올라가고 안 올라가고 차이가 크다. 잎을 또옥 또옥 따서 큰 손으로 여리고 작은 잎새 하나하나 들춰가며 샤워시켜 준 뒤 물에 둥둥 띄워놓고 스무디, 주스, 에이드 등의 음료 장식으로 올린다. 찬 자몽 음료 위에 올라가는 애플민트가 제일 예쁘다. 빨강 자몽과 대비되는 초록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음식을 눈으로만 먹을까. 우리 몸의 오감을 다 사용해 먹는다. 눈으로 보고 향을 맡으며 혀로 느끼면서 맛을 본다. 청각은 어떨까? 스낵을 먹을 때 ‘바삭바삭’ 거리는 소리는 정말 맛이 좋은 소리다. 견과류의 오도독 씹어먹는 소리는 경쾌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맛이다. 김은 밥에 싸 먹어도 맛있지만 입에서 부서지며 부드럽게 녹는 게 제맛이다. 얼음은 씹어먹으면 그렇게 시원한 맛이 날 수가 없다. 치아와 얼음이 압력을 받아 부딪히며 내는 소리는 더위를 경쾌하게 날려 버린다. 얼음 사이사이 잠겨있는 콜라는 빨대로 호로록 거리며 빨아먹어야 맛있다. 후루룩 면발을 당겨서 먹고선 국물까지 후후 불며 먹어야 진정한 라면 광고가 완성된다. 맥주 광고는 어떤가. 맥주가 익어가는 소리까지 클로즈업하며 마시고 난 후 ‘캬아!’ 소리와 함께 ‘탁!’ 힘차게 내려놓는 소리까지가 광고의 완성이다. 맛에서 소리를 빼놓을 수 없다.


달그락 거리며 오물오물 씹어먹는 딸아이의 야무진 입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요 야물딱진 입 움직이는 모양새가 식사의 고명이다. 고 입으로 밥만 먹을까, 밥을 먹으며 말도 잘한다. 분주한 우리 집 식탁은 늘 떠들썩하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시끌벅적한 식탁의 재잘거림은
우리 가족 음식의 백미

밥은 음미할 새 없이 빠르게 먹어 없어진다. 맛을 느긋하게 즐기지 않아도 괜찮다. 모든 감각을 깨워 가장 맛있는 맛으로 골라 먹으면 된다. 체하지만 않게.





멀대 같이 키를 키우고 있는 민트 녀석이 초록 꽃을 피웠다. 꽃 하나를 피우기 위해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가위질에 한 번 단념하고, 예초기 날에 한 번 또 단념하고도 밤낮 사나운 날씨와 함께하며 긴 기다림 끝에 초록잎 가녀린 아기꽃을 매달았다. 싱그러운 여린 잎에 포옥 싸여 곱게 피워가고 있다. 연한 초록 잎사귀가 꽃잎을 잘 감싸 안아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주면 좋으련만, 보이는 꽃마다 또 토옥 분지르고 마는 주인댁의 손끝이 매섭기만 하다. 자리를 잘못 잡고 꽃을 피워서 그렇다. 뒷마당 무화과나무 옆 시멘트 담장아래 뿌리를 내렸으면 좋았을 텐데.


뜨거운 태양의 기운에 절로 발걸음이 느려지고 몸이 흐물흐물해진다. 바깥에서 하루 종일 후끈한 햇볕을 받아내며 초록 기운이 날로 왕성해지는 민트에게도 한낮의 여름은 고역일 테다. 날도 더운데 자꾸 꽃을 잘라버리고 잎을 따버리고 줄기를 분질러 미안해지려고 그런다.


고작 고명으로 올리겠다고 네 꽃이 피는 걸 방해한다. 음식을 입으로 먹지 눈으로 먹는 건 뭐람.


내 아이의 재잘거림은 예쁘다. 너의 꽃도 무척 예쁘겠지? 내 아이 예쁜 줄은 알면서 네 꽃을 꺾어버린 것이 이제와 조금 미안타.

2024년 6월의 애플민트 초록꽃


2023년 9월의 애플민트 하얀 꽃

한낮의 무더위를 견디며 꽃 피우기를 바라는 너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까. 나는 한 번 보고 버리더라도 청량한 얼음 음료 위에 너의 잎사귀를 푸릇하게 장식 삼아야 하고, 가게 미관을 위해 너의 꽃피움을 방해해야 한다. 네 처지가 가련하지만 불볕 더위에 뿌리까지 뽑혀 돌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한갓 잡초 보다는 낫지 않은가. 그것을 위안으로 삼으렴.


한두 달이 지나면 뒷마당 무화과나무 옆 담장 아래 하얗고도 연한 보랏빛 꽃 무더기를 볼 수 있을 테니 그때까지 좀 기다리렴. 더위도 주인댁의 핍박도 겨울이 오면 사라질테니 그때까지 좀 기다리렴.


내 꽃만 예쁜 것이 아니고

네 꽃도 참 예쁘다.

네 꽃이 예쁘지 않아서 그런게 아니라

네 어린 잎이 참으로 곱고 고와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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