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 뒤편 비비추
뒷마당 앵두옹 옆에 꽃이 피었다.
나리꽃인가? 점탱이 주황 나리는 앞마당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한데 흰 나리가 있었던가? 앵두옹에게 살짝 기대어 자라나 초록 줄기도 잎도 자라는지 몰랐다. 앵두 보다 더 키가 자라고 흰 꽃이 피고 나야 눈에 띄었다. 커다란 나팔을 활짝 연 그녀의 하얀 자태가 곱다. 홀로 우아하게 피었다.
고운 백합 사진 찍으러 가까이 갔다 보라색 그녀를 만났다. 이런 꽃이 있었던가. 바닥에 있는 너는 누구냐. 매년 뒷마당은 그저 넓적한 초록잎으로 수두룩하게 덮여 있었는데 무성하던 잎이 몽땅 잘려 나가고 한구석에 초라하니 몇 포기만 남았다. 뒷마당 가득 푸르던 네 친구들 모두 어디로 갔냐. 그런 와중에도 한여름 땡볕 아래 고운 꽃을 피워낸 그녀가 궁금하다.
보라 꽃의 정체는 비비추. 이름도 멀쩡히 있다.
남편 사장이 꽃밭을 죄다 예초기로 쳤단다. 초록 잎이 빽빽하게 올라와 잡초도 안 올라오고 좋더구먼. 왜 잘랐냐고 묻자 남편 사장 왈,
“발에 차여서.”
꽃도 풀도 모르는 야멸찬 사장.
가스통도 그쪽으로 들고 나고, 로스팅 기계 제연기도 배기구도 뒷마당 쪽에 있어 주기적으로 청소를 해줘야 한다. 청소는 청소고 발에 차인다고 멀쩡한 꽃을 다 잘라놔서 속이 상한다. 그것도 올해 처음 발견한 꽃이구만. 그곳에 있었는지, 없었는 지도 모르게 관심도 없었던 그녀를 언제 봤다고 마음이 쓰이는 것일까.
남편 사장은 발에 차이는 풀떼기 말고 그 옆에 번듯하게 선 무화과나무에 관심이 지대하다. 지난해 나뭇가지를 몇 개 꺾어다 시골집 밭 가에 몇 개 꽂아 두었다. 시골집은 산골이라 그런가 많이 춥다. 지난겨울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다 얼어 죽은 줄 알았는데 6월이 되어서야 한 줄기가 잎을 내밀고 올라오는 걸 발견했다. 남편이 얼마나 반가워했는지 모른다. 무화과는 먹을 것이 달려서 그런가? 열매 달리는 걸 유난히 좋아하는 그다. 열매가 열리면 더 좋은 것, 맛이 있다면 더 좋다. 천상 농부의 마음가짐을 가진 남편이다.
비비추도 먹는 풀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나물을 즐겨 먹지 않으니 무용지물이다. 친한 나물도 아니고 모르는 나물이라면 굳이 맛볼 필요가 없을 테다.
이 풀이나 저 풀이나 작은 식물들은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고 뜯기고 뽑히고 잘려 나간다. 이름이 있고 없고를 떠나 사람의 필요에 따라 가차 없이 생이 결정된다.
그저 발에 걸리적거려서 잘려나간 생명.
관심을 가지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장미꽃 마저 져버린 여름. 뜨거운 태양을 피하고만 싶을 것 같은 바깥 날씨에도 꽃을 피우는 녀석들이 있었다. 땡볕을 피해 건물과 나무 그늘을 집 삼아 파릇하게 잎을 내밀고 고운 꽃을 피운 그녀들. 진작 관심을 가지고 남편 사장에게 말했다면 비비추의 여름 꽃을 지켜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관심이 아이들을 지킨다.
나의 무관심이 아이들을 죽인다.
아침 출근길 주차를 하고 내려 눈길 한번 주는 게 전부이나, 그 작은 관심으로 그녀가 내 마음에 들어와 꽃을 피웠다.
그저 보면 좋다.
꽃이란 그렇다.
꽃이란 그렇더라.
그런 줄 모르고 살았다.
그녀가 그곳에 있었는지 몰랐던 10년 세월이
아쉽고 아쉽다.
건물 뒤편 후미진 곳
발에 차이는 그곳.
해를 피해 숨겨진 나의 꽃을 보아주세요.
수줍게 고개 숙인 보랏빛 향기를
그녀의 이름은 비비추랍니다.
비비추의 독백
뭐래니.
누가 보아 달라고
꽃을 피우는 건 아니다.
봄바람이 따뜻해 손을 내밀어
바람향을 맡았을 뿐
여름 바람이 따뜻해
고개를 내밀었을 뿐.
땡볕에 고생할 일도 없이
서늘한 담장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을 뿐
오늘은 좀 덥네.
비가 오면 흠뻑
물을 마시고 싶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