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한 새벽바람에 속아 출근하자마자 커다란 정원가위를 들었다. 바람은 시원할 줄 알았지. 입추가 지났는데 내리쬐는 태양도 가을바람을 무시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오전 시간이라 더욱 그랬다.
양손 가위를 들고 푸른 잎을 잘라내기가 몇 번. 그늘을 찾아 실내를 들락날락하며 겨우 풀 이발을 시켜주었다. 그리곤 마당에 누워있는 빗자루처럼 널브러졌다.
풀아 대단하다. 이 열기를 견디고 마당을 점령해 나가는 너희가 갑이다. 풀만 대단할까. 태양 아래 풀을 품어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야 대단하다. 풀이 뿌리내리는 틈바구니를 만들어내는 돌멩이도 생명 없는 붉은 돌담도 대단하다. 불타는 듯 뜨거운 벽돌담을 기어오르는 담쟁이넝쿨아 너도 대단하다. 태양 아래 모든 것. 한여름의 햇살을 견디는 모두가 대단하다.
태양을 견디는 자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땀을 줄줄이 흘리며 쓰러질 듯 위태로운 나만이 나약한 존재다.
자연은 이렇듯 한 순간에 경외감을 안겨준다. 태양 아래 모든 것이 대단하다. 먼 옛날 맨몸으로 태양과 마주해야만 했을 선조들은 그것을 몸으로 느끼며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태양을 추앙했다. 나는 지금 태양을 피해 작은 피난처로 내 한 몸 피할 수 있어 감사할 뿐이다. 태양을 피한 줄 착각했을 뿐이다. 문을 열고 나가면 태양과 마주해야 함을 잠시 잊고 있을 뿐이다. 자연과 부딪혀 보아야 안다.
태양 아래 서라.
가위를 들고 지휘를 해 보아라. 여름의 태양 아래 선 자만이 그들을 호령할 수 있다. 태양 아래 견디는 자 누구인가. 과연 나에게 자격이 있을까. 마당의 주인은 나인 줄 알았는데 하늘을 지붕 삼아 마당의 땅을 집 삼아 사는 생명들에게 주인 명함을 내밀 수나 있을까. 태양 아래 자신을 내던지며 평생의 삶을 시험하는 그들에게 나같이 연약한 한 인간이 주인이라니 가당치도 않다. 마당의 풀과 나무와 돌들을 호령할 자는 하늘 아래 없다. 오직 오늘의 태양만이 그들의 주인인지도 모른다.
실내에 들어와 찬 바람을 쐬며 다시는 맨 몸으로 태양에 맞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모자를 쓰고 양산을 쓰고 커다란 파라솔을 준비해야겠다. 빛바랜 파라솔일지라도 혼자 들기 버거울지라도 너른 그늘이 펼쳐지는 파라솔을 준비하자.
태양이 강렬할 땐 피하라.
더위가 나를 삼킬 수 있으니.
새벽의 서늘한 태양을 맞이하라.
그러나 속지 말라.
새벽의 태양도 떠오르면 곧 뜨거워진다.
아니다 태양은 늘 뜨겁다.
잊지 마라.
태양을 가린다고 가려지지 않는다.
태양 아래 서서 태양을 마주하라.
그러면 나의 하찮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