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화
2023. 9. 26
꽃집에서는 벌써 국화가 꽃망울을 터뜨리며 한아름 안아가 달라고 팔을 벌리고 있다. 둥그렇게 소담한 국화 화분을 보면 꽃집 앞에서 서성이게 된다. 집에 가면 잘 키우지도 못할터인데 또 들고 가서 어쩌려고. 그래도 늘 이맘때 국화가 시장에 나오면 꽃집을 바라보게 된다. 꽃망울이 막 피기 시작하는 국화의 요염한 자태를 좋아한다. 새색시 같기도 하고 부끄러워하며 고개 드는 모습이 참 어여쁘다.
가게 앞마당 한편에는 몇 해 전 아이들 어린이집에서 가져와 화분에서 옮겨 심었던 국화가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한해살이 풀들은 다 죽고 국화만 겨울을 이겨내어 몇 번의 가을을 맞았다. 올해는 민트를 조금 밀어내고 영역을 더 넓혔다. 국화는 뿌리를 밀고 보도블록 사이로 올라온다. 따뜻한 햇살을 좋아하는 민트랑 막상막하다. 얼마 전 키만 멀대같이 자라는 녀석을 민트랑 같은 키로 잘라줬다. 순 자르기를 해서 풍성하게 해 준다고 하는데 시기도 방법도 모르고 그냥 지저분하게 다니지 말라고 이발해 줬다. 꽃이 피는 대로 피고 내년에는 더 풍성해지기를 바라면서.
초록 꽃망울이 잔뜩 볼을 부풀리고 있다. 댕강 잘려 나간 게 마음이 좀 아프지만 지난해 키가 커져서 덜렁거리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잘했다 싶다. 한두 뿌리에서 올라오는 키 큰 아이들 꽃 좀 피워 보겠다고 자르지도 못하고 데크에 붙여놔도 바닥을 향해 누웠던 아이들이다. 가을이 오기 전, 꽃망울 올라오기 전에 미리 좀 해줄 것을 후회가 되기도 한다. 요 망울망울 예쁜 것들을 보려면 내년에는 좀 영리하게 부지런해야겠다. 그래도 남은 꽃망울이나마 방긋 터지는 구경을 빨리 하면 좋겠다.
국화 피는 가을
꽃집마다 소담한 꽃
한아름 안아가라며
색색이 부릅니다.
마당에 푸르른 국화야
얘 너는 언제 나오냐
오늘은 더 살이 오른 것 같다?
원래 나는 푸름이야.
옆을 봐 다 초록이지.
때 되면 피겠지
보채지 좀 마.
빵 터지면 더 예쁘겠네
빨리 보고 싶다
얼굴이 더 퍼레지기 전에
볼을 잔뜩 부풀리며
새초롬합니다.
국화야 빵 터져라.
2023. 10. 23
언제나 기쁨을 주는 국화
행복을 주는 웃음
고마운 너에게
감사하며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별빛 하나 찾을 수 있기를
바쁜 일상 속에서
느긋함과 여유를 누리기를
미로 속에서
실타래 끝을 발견할 수 있기를
어려움 속에서
헤쳐나갈 오솔길을 발견할 수 있기를
건조한 삶 속에서
작은 즐거움과 활기를 발견하기를
근심 속에서
행복 한 줌 찾을 수 있기를
언제나 용기 내기를
2023. 10. 27
가게 화단에 피는 국화는 한꺼번에 피지 않아 더 좋다. 덕분에 매일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이 녀석도 활짝 피면 하얀 국화꽃이 될까? 변신은 신비롭기만 하다.
옆에서 피고 있는 노랑 국화야,
가을비를 맞아 더 싱그럽구나.
새벽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배웅해 줘서 고맙다.
나에게 오늘은 활짝 핀 날.
가을비를 맞으며 집으로 간다.
새벽비가 내리지만 따뜻하다.
춥지 않은 게 이상타.
상쾌한 공기가 많이 그리웠나.
2023. 12. 5
늦게 피는 꽃
키를 맞춰 잘라 주었던 줄기는
늦게라도 꽃을 피우기 위해
꽃대를 올리고
꽃봉오리를 만들어
늦게 꽃을 피운다.
추운 밤 한기를 이겨내고
아침해를 맞은 국화
추위를 견디며 화려하게 핀 꽃도
계절에 맞춰져 버린 꽃도
애처롭기는 매 한 가지다.
내일은 따뜻하면 좋겠다.
고통이 제 할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란다.
삶이 제 갈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기다려 주란다.
2024. 3. 26
겨울이라는 고독한 시간을 지나 차가운 땅을 뚫고 나왔다. 햇살을 맞이한 너는 참 싱그럽다. 봄의 국화야 너는 누구보다 파릇하다. 봄쑥이 아니다. 너는 봄의 국화다.
가게 마당에는 쑥과 국화가 나란히 자라난다. 나는 매년 보니 피는 곳을 알아서 쑥과 국화 싹이 올라오는 줄 안다. 둘은 나오는 잎 모양이 한 가지다. 아는 나도 눈으로 구분이 안 된다. 꽃이 피어봐야 안다. 그전에는 향기가 다를 뿐이다.
쑥향도 참 좋기는 하다.
국화를 좋아한다. 좋아하는데 이유가 있을까? 그래서 국화에 대한 글이 여럿이다. 지난가을 정원의 그 아이들 덕분에 울고 웃고 위로받으며 따뜻했던 마음을 더듬어 보았다.
관심을 가지면 어수선한 정원 정이 안 가던 풀꽃, 나무에게도 애정이 생긴다. 삶에 대한 애착.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무료한 일상 속 삶에 대한 사랑을 키울 수 있다. 그건 작은 관심에서 비롯된다. 초록이 하나에게 받은 위로는 그들을 돌보는 것으로 되돌려주게 된다. 눈길 한 번 더 주게 되고 또다시 기쁨으로 돌려받는, 그건 사랑의 순환 같다. 관심은 국화에게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가을의 풍요로움이 나를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어수선한 마당에서 매일의 변화를 찾던 나는 이제 국화의 꽃망울을 기다린다. 기다림이란 지난가을 동고동락을 함께하고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은 전우애 같은 것이다. 기다림이란 변화를 초월하는 더 큰 사랑이다.
나의 꽃망울을 차 오르기를 기다린다.
나를 비롯한
모든 이들의 꽃망울이 빵 터지기를 소망한다.
지금은 태양볕을 견디는 시간이다.
한낮의 태양은 아직도 뜨겁다.
잘라놓은 국화가 누렇게 말라가고 있다.
잘못했다 국화야.
정원의 국화에게 처음으로 물을 뿌려줬다.
너무 짧게 잘라줬나 보다.
가을이 와 봐야 안다.
잘린 가지에 새싹이 돋아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뜨거운 태양도 얼른 물러가고 찬 바람은 늦게 오면
새싹에 풍성하게 올라올 테다.
나는 기다리기만 할 뿐이다.
<어수선한 마당에 피는 꽃>을 찾아와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작은 풀꽃에게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매일의 일상을 사랑하는 우리 늘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