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을 마음에 담다

by 눈항아리

산에 비친 구름 그림자는 산 그림자라고 할까, 구름 그림자라고 할까.


산그림자라고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산그림자는 산의 그림자이니 구름 그림자라고 하는 게 옳겠다. 그러나 산에 비치는 그림자이니 산그림자라고 하면 안 될까? 물에 비친 산의 그림자를 산그림자라 해야 할까. 산이 비치는 것과 산에 비치는 것의 차이. 둘 다 산이 들어가는데.. 그러나 산그림자는 산이 햇볕을 가려 나타나는 그림자라는 것이 사전의 설명이다.


나는 산그림자라는 말이 마음에 드는데..


그러나 그 그림자는 구름의 그림자가 확실하다. 출근길 날이 좋은 날.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둥둥 떠 있는 날. 이런 날이면 미세먼지 없이 시계가 확 트여 서쪽 태백 준령 먼 산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마음이 뻥 뚫린다. 서쪽 하늘에 뜬 구름이 나무 머리가 보이는 가까운 산에 그림자를 만든다. 까만 그림자가 둥둥 산에 떠 다닌다. 구름을 먼저 보는 것이 아니라 산에 나타난 까만 그림자를 먼저 보게 되니 산그림자라 우겨 보는 것이다. 그 그림자를 나는 참 좋아한다. 구름 그림자를 보면 마음이 산과 구름과 같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날씨가 좋으니 그저 기분이 좋은 건지도 모른다.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것으로 보아 살랑바람도 부는가 보다.


그걸 산그림자라고 하면 안 될까?

그걸 구름 그림자라고 해야 할까?


날씨가 좋은 날 아침이면 드는 짓궂은 생각이다. 그것이 산 그림자인들 구름 그림자인들 무슨 상관인가. 볼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그 풍경을 마음에 담았다. 그래서 매번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눈과 마음에 담는다.


시골길을 달려 7번 국도를 올라타면서 서쪽을 바라보면 맞이할 수 있는 출근길 풍경. 수풀이 무성한 작은 개천 옆으로 펼쳐진 들녘을 지나 먼 산에 그림과 같이 펼쳐진 풍경은 자연이 매일 나에게 주는 선물 중 하나다. 바쁜 아침 스치듯 지나치는 찰나의 순간 나는 소중한 느낌을 품고 차를 달린다. “얘들아 예쁘지!” 하는 순간 지나가 버리고 만다. 그건 나만이 알아챌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다. 인생이란 개개인 스스로가 살아가는 것이므로 달리는 차를 도로에 멈추고 그 순간을 찍어 보여준들 나와 같은 감수성을 가질리는 없다. 스스로가 소중한 순간들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넓은 하늘과 먼 산과 흘러가는 구름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연은 늘 곁에 있다. 자연이 아니라도 선물 같은 순간들은 곳곳에 펼쳐져 있다. 그걸 모르고 이제까지 살아온 시간이 아쉽고, 지나온 길들이 궁금하다.


선물과도 같은 풍경을 마음에 담는 순간.


순간은 높은 곳이나 낮은 곳을 가리지 않고 시간이 많음과 적음을 가리지 않고 지나간다. 하늘에서 찾던 푸르름을 땅에서 찾고 너른 들판에서 찾던 바람의 노래를 내 작은 마당에서 찾는다. 출근길 스치듯 지나오며 마주하는 풍요로움을 답답한 일터 작은 정원에서 찾으려고 노력했다. 작지만 그들은 바람과 구름과 햇살을 모두 품고 있었다. 벗어나고 싶으나 벗어날 수 없는 생의 굴레와 같은 일상이다. 마당의 작은 녀석들은 어느 날 내 삶 안으로 들어왔다. 내 눈에 보이더니 마음속까지 차지했다. 그들과 바람을 타고 탈출하고 싶었다. 때로는 수다를 떨었고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지고 땅속을 유영하고 그늘진 나무 아래에 나른하게 누워 하늘을 보았다. 하늘을 우러르며 하나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금요일은 하루 종일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도란도란 함께 속삭였다


마당의 녀석들이 애처롭기도, 예쁘기도, 때로는 걱정되기도 하였다. 밖에 나가기가 요원한 일상 속,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같은 처지가 되었다. 나와 같이 발이 묶여 어디로 가지 못하는 그들이 더욱 안쓰러웠는지도 모른다. 10년의 세월을 함께 지내면서도 보아주지 못했던 것이 그래서 많이 미안했다. 나와 닮은 그들이라서.


선물과도 같은 풍경은 늘 내 곁에 있다. 우리는 그걸 모르고 지나친다. 사실 작은 관심만으로 커다란 선물을 받을 수 있다. 내 아이의 사진을 남기듯 그들의 사진을 남기거나 친척의 안부를 물어보듯 그들의 안부를 묻는다. 더운 날 그들의 시듦을 걱정하고 비바람이 거세면 잘 잤을까 궁금하다.


처음부터 그들의 안부가 궁금한 건 아니었다. 처음부터 마당의 아이들이 보인 것도 아니다. 처음은 아마도 가게 안 화분 속에 10년 간 갇혀 지내는 식물들에게 관심을 두었던 것 같다. 작은 화분 속 한 줌 흙에서 자라나는 가녀린 그들. 그들도 새싹을 틔우고 자라고 있었다. 어느 날 나의 관심이 확장되어 현관문을 열고, 창문을 열고 바깥의 풀과 나무가 보인 것이다. 전깃줄에 앉아 있는 새가 보이고 꽃에 앉으려 낮은 비행을 하는 벌들이 보였다. 부러 먼 산을 보지 않아도 작은 마당의 꽃 한 송이에서 풍경을 담을 수 있었다. 내 곁에 있는 것들에게 보이는 작은 관심이 그 시작이다. 그것은 공간을 확장시켜 가기도 하고 시간을 확장시켜 나아가기도 하는 것 같다.


아이 넷을 두고 무슨 풍경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다. 내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은 네 명의 아이들인데 말이다. 그런데 가끔은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생각이 든다. 힘들지만 무료해진 하루가 답답하기도 하다. 놓을 수 없는 하루하루. 먹이를 바라며 부리를 벌리고 목놓아 울어 젖히고 있는 새끼들의 어미새가 되고, 일인 다역을 하는 자영업자로 최전선에서 일하는 나는 물러설 곳이 없다. 바쁜데 무슨 풍경 타령이냐고? 그건 내가 선물을 많이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기분 좋은 선물은 삶의 활력이 된다. 일상의 틈새를 윤기로 채우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그 선물이다. 나는 그래서 자연이 주는 선물이 좋다. 굳이 자연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모든 순간들이 내게 선물을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선물은 나 자신만이 나에게 줄 수 있다.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열면 보이는 선물.


나는 이곳 일터에서 산에 비친 구름 그림자를 마음으로부터 꺼낸다. 쨍한 여름날 구름 그늘 아래 푸른 산을 한가롭게 거니는 것은 구름일까? 나는 너른 들판을 지나 먼 산을 한달음에 뛰어올라 구름 그늘과 벗 삼아 자유롭게 흘러 다닌다. 마당의 아이들도 함께~~


두 번의 겨울을 마당에서 함께 보낸 다육이


바라고 바라고 바란다. 자유롭기를 바란다. 나를 옭아매지 않는 곳을 향해 나아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실은 내 안에 자유가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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