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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Aug 18. 2024

비빔면과 함께 만두

새벽 12시 48분, 허벅지가 터질 것 같은 가파른 언덕길로 자전거를 타러 다녀온 복이. 어필어필하더니 아빠와 야밤에 Up hill을 하고 왔다. 어필이 뭔가 했네. 고생하였으니 오늘도 비빔면을 끓인다. 운동 후 즐거운 야식 타임이다. 복이 혼자만의 즐거운 라면 파티. 아빠는 운동 후 꾹 참고 있는데 녀석은 아랑곳 않고 먹는다. 복이는 말라서 좋겠다. 하지만 야식을 그렇게 챙겨 먹으면 20대부터 배가 나오지 않을까? 지난번에는 라면 더하기 아이스크림이었잖아. 찌는 거 한 순간이다 너?


파랑 봉지, 하늘봉지, 초록봉지, 갈색봉지, 빨간 봉지, 비빔면 봉지 색깔이 다양하기도 하다. 이번에는 빨강과 하양의 조합이다. 비빔면에도 빼놓을 수 없는 추가물을 찾아 냉장고 아래위를 확인한다. 싱크대 수납장도 위아래 꼼꼼히 확인한다.


“스팸 같은 거 없어요? “


“없다. “


찾은 것은 냉동 만두 3개. 엄마 만두 오븐에 구워도 되나요? 3개를? 그거 나중에 국물 라면 먹을 때 넣어 먹으려고 남긴 건데? 겨우 3개를 오븐에 넣고 돌리겠다고? 그냥 다음에 라면 삶아 먹을 때 넣어. 그러나 포기할 녀석이 아니다. 엄마 한 개만 삶아도 되나요? 삶으면 다 삶지 왜 하나만 삶냐, 그냥 다 삶아.


만두 물속으로 투하.


“물 끓을 때 넣어야 하는데.”


건조한 그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기포 없는 미지근한 물속에서 수영하고 있는 만두. 잘 익기만 하면 된단다. 곧 물이 보글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니 괜찮다.


복이는 빠른 손으로 비빔면 봉지를 뜯어 면 투하. 깜짝 놀랐다. 이런 멋진 장면을 목격하다니! 녀석 머리가 좋다. 비상하다. 내 아들 장하다! 비빔면과 같이 끓일 생각을 하다니! 누구도 생각지 못한 비빔면과 끓인 만두의 조합!


“만두가 터졌어. 너무 많이 끓였나 봐. 엄마 만두는 얼마나 끓여야 해요? ”


모른다. 이 녀석아. 만두만 익으면 되지 않을까? 충분히 익었을 것 같다만? 만두는 익었는지 알 수 없으니 녀석 면발이 익었는지 두 가닥 후루룩 맛을 본다. 녀석이 라면을 끓일 때 면이 익었는지 확인하는 방법이다.


비빔면을 채반에 건졌다. 만두도 같은 운명의 냄비에 들어있다 채반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면과 함께 삶아진 만두가 샤워를 당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다음번엔 물만두를 냉동실에 채워놔야겠다. 비빔면과 같이 끓여 샤워를 시켜 먹을 수 있도록. 놀라운 연합 작전. 비빔면과 물만두라는 창의를 엄마에게 선사하다니 복아 네가 대단하다.


복이는 그릇을 찾는다. 넓적한 그릇, 볼, 아무거나 빨리 와 다오! 싱크대 위를 죄다 열어보고선 가장 큰 접시를 꺼낸다. 면을 접시에 올린다. 싱크대 위에 공간이 없어 위태위태한 공간 위에 걸쳐둔 채다. 엄마 마음만 조마조마하다. 복이의 라면이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대형 접시가 깨질까 걱정이다. 넓은 곳으로 옮기라니 기껏 이사 보낸 곳이 면을 끓이던 전기레인지 위다. 나의 마음이 그곳에서 부글부글 끓는다. 이제 벌건 비빔장을 뜯어 접시 위 하얀 면 위에 붓는다. 비빈다. 그리고 만두를 가지런히 놓는다. 플레이팅 완료!


반찬 없음. 더 이상 추가물 없음. 오늘은 그나마 깨끗하다. 3분도 안 되어 비빔면과 만두를 흡입한다. 3분이 채 안 지났다. 자전거를 바람과 같이 달리고 오더니 라면도 바람처럼 먹는구나.


“요즘 너무 빨리 먹는 것 같아. 체한 것 같아. “


그래 게임이 급했겠지. 오랜만에 토요일 새벽 시간 가족 게임에 참여하고 싶었겠지.



비빔면과 만두의 조합은 근래 들어 두 번째다. 지난번에는 군만두와 비빔면을 동시에 조리하기 시작했다. 오븐에 만두를 넣고 10분을 돌리고 또 10분을 돌리는 동안 남겨진 비빔면 두 젓가락은 접시에서 탱탱 시뻘겋게 불어 있었다. 끓여서 함께 먹는 오늘의 요리가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녀석의 야식 만드는 장면을 정면에서 목격하는 엄마는 놀라운 눈으로 튀어나오려는 괴성과 같은 목소리를 가만 누른다. 지난번 가르쳐준 설거지는 일회성이었는지 접시는 빨갛게 물든 채, 싱크대에 마른 라면 부스러기와 라면 수프 봉지가 함께 가지런히 놓여있다. 다행인 점은 수프가 가루류가 아니라서 흩뿌려져 있지 않은 점, 그러나 걸쭉한 장이 어디에 묻어 있을 것이 뻔하다. 내 주방아 새벽까지 고생이 많았다.


창의력이 더해진 오늘의 수상한 야식은 비빔면과 함께 끓인 만두였다.


비빔면과 함께 끓인 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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