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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Sep 11. 2024

야밤에 치킨집에서 1

이틀 전 야심한 시각에 가게를 닫고 아이들을 모아 퇴근을 하면서 치킨을 먹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의견의 모으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남편이 가자고 하면 모두의 의견이 일치된다. 라면에도 진심, 치킨에도 진심인 우리 가족이다.


일요일에 정동진으로 자전거 하이킹을 다녀온 복이 와 아빠가 약속했던 치킨이라고 했다. 정동진까지 자전거 코스는 왕복 4시간이 넘는 길인데 아빠와 아들 둘이서 얼마나 일취월장하여 돌아왔는지 모른다. 남편은 한 번 넘어져 다리에 작은 상처가 났고 온몸이 근육통이 생겨 쩔쩔매는 것처럼 보였으나 얼굴은 운동을 열심히 하면 그렇듯 피부가 뽀얘진 것 같고 생기가 돌았다. 복이는 자신의 성취가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웃고 다닌다. 일주일 전쯤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넘어져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에 밴드를 붙이고 다니지만 그냥 좋단다. 둘은 대회를 꿈꾸고 있다. 그란폰도에 도전해 보고 싶단다.


꿈의 자전거에 차근히 도달하는 그들을 위한 치킨이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 몸이 천근만근인데 좋아라 하는 아이들을 보면 또 안 갈 수도 없고 쫄래쫄래 따라나선다. 그날은 한 해 농사의 첫 수익을 달성한 날이기도 했다. 좋은 날 남편은 늘 치킨을 먹자고 한다.  


오랜 검색 끝에 찾아낸 치킨집은 기름이 깨끗하다고 소문이 난 집이란다. 달복이, 복실이는 매장 치킨을 처음 먹어보러 간다. 금요일 외박을 하는 둘을 빼놓고 몇 번 갔던 터라 우리에게는 익숙했지만 꼬마 둘은 별천지다. 늦은 밤 엄마가 좋아하는 CAS*를 병으로 마시는 사람들을 발견하고는 자꾸 옆 테이블의 술병을 가리킨다. 그래 엄마도 마시고 싶지만 운전해서 집에 가야 하니 참는 거야. 자꾸 옆구리 찌르지 마라. 엄마는 한 캔만 마시는 사람인데 그것도 건강, 주량 등의 이유로 가끔만 마시는데 아이들은 엄마가 주당인 줄 안다. 아빠가 술을 안 마시니 주위에  술 마시는 사람이라고는 엄마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술에 관한 설문지가 오면 엄마가 걱정된다고 적어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생님 그건 절대 오해이니 잘 알아들으시길 바랍니다. 술이라고는 접해보지 못한 아이들은 한 병 술도 술인 줄 압니다. 흑흑. 소주를 먹어본 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합니다. ’


여하튼 우리는 치킨집에 잘 도착하였고 양념하나 후라이드 하나를 시켰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두 테이블이 있었고 다행히 좁은 매장에 우리 가족 여섯 명이 앉을자리가 있었다. 미리 주문을 해 놓고 간 터라 금방 치킨이 나왔다. 뜨거워서 손을 못 댈 정도, 바삭한 튀김옷, 촉촉한 속살을 가진 후라이드가 먼저 나왔다. 반 정도 정신없이 뜯고 있으려니 양념이 나온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사진을 한 컷 남겼다. 먹을 것을 보면 혼을 빼놓는 먹보라서 사진을 잘 남길 수가 없다.


입이 짧은 달복이도 잘 먹는다. 순살만을 고집하는 녀석의 나눔 접시에 닭다리를 하나 올려주었다. 뜨거워서 식히는 동안 살을 발라 놓아주니 새처럼 하나씩 쪼아 먹는다. 인생 닭이란다. 유럽의 어느 나라가 하는 축구 경기를 보며 큰 아이들과 아빠는 닭을 뜯는다. 도란도란 즐거운 닭 뜯어먹기. 복실이는 엄마 옆에서 연신 좋단다. 얼굴을 비비고 난리다. 처음 닭집에 왔는데 왜 안 그렇겠는가. 이제는 양념소스도 곧잘 먹는 복실이의 뱃속을 두둑하게 채우고 있다. 치킨무와 콜라로 느낌함도 잡아주며 열심히 먹는다. 나라고 질쏘냐. 아이들 접시에 얼른 놓아주고 야무지게 뜯어먹는다. 역시 매장에 와서 바로 먹는 치킨이 제맛이다. 야밤에 이 무슨 행복한 뱃살 더하기란 말인가.


우리의 알콩달콩 닭 먹기를 구경하는 옆 자리 손님이 말을 건다. 아이가 넷? 눼눼. 중년의 남자분과 여자분은 아이들이 말한 맥주병을 무수하게 올려두고 있던 분들이다. 두 분이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우리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네는 게 더 많았는데 거의 파한 분위기였다. 빈 술병이 여럿 있었고 맞은편 빈자리에 두 명이 나간 흔적이 보였다. 아이 넷을 데리고 다니면 으레 받는 시선이라 그런가 하였다. 손주들 보는 심정으로 우리를 보시는가 하였다. 어른들이 노상 하는 말 “애국자다”라고 하며 아이들의 나이도 물어보곤 한다. 자리가 엄청 가깝다. 애써 불편한 감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닭을 바르고 뜯었다.  


열심히 먹고 남편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농산물 수익을 낸 역사적인 날. 그 돈이 나에게로 들어왔으니 내가 쏘는 날이다. 그리고 계산을 하러 카운터로 향한 남편은 뒤를 돌더니 옆 자리 중년의 손님에게 눈을 부라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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