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여름 비와 늦옥수수

by 눈항아리

여름비가 내린다. 소낙비 같은 굵직한 비가 올해 들어 처음 내린다. 후드득 떨어지는 빗줄기가 반가운 이유는 가뭄에 농업용수부터 제한 급수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릉 오봉댐의 저수량이 낮아지자 지난주부터 그랬다.


땅을 갈면 먼지가 폴폴 나는 가뭄 사태. 여름이면 장맛비가 지겹고 가을이 다가오면 태풍을 동반한 폭우가 거세었는데 올해에는 소나기 한번 시원스레 내린 적이 없다. 지역마다 또 다르기는 하지만 내가 사는 영동지방은 그랬다.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고 한낮의 태양이 뜨거운데도 한 번 내릴법한 빗줄기는 시원스레 쏟아지지 않았다. 그렇게 기다리던 빗줄기가 굵직하게 차지붕을 두드린다.


밭에서 일하던 농부 아빠는 마당에서 바빴나 보다. 비설거지가 이것저것 많았을 테다. 일요일 오후 늘어지게 낮잠을 즐기고 있다 농부 아빠의 다급한 전화를 받아 들고 일어났다. 아침에 부탁한 비닐을 빨리 달라는 것. 고추를 담아야 한단다. 부스스 일어나 김장 비닐을 사러 나가는 길. 시원한 여름비가 맞아준다. 폴폴 먼지 나던 시골길을 씻어주고 초록에서 연둣빛, 노랑빛으로 변하는 들판 위에 방울방울 생명수를 흩뿌려준다. 단비가 내린다. 농부 아낙의 낮잠을 깨운 고약한 비지만 비몽사몽 간에 운전을 해 마트에 가면서도 비가 반갑기만 하다. 마트에 도착해 김장 비닐을 들었다.


운전해 오는 사이 전화와 문자가 네 통이나 와 있다. 빨리 전화 요함. 전화를 못 받으면 얌전히 문자 하나 보내고 말 일이지 연이어 문자와 전화를 하는 건 아주 급할 때나 있는 일이다. 이 양반이 또 무슨 급한 일이 있는 것인가. 전화를 했다. 왜 전화를 안 받느냐는 소리가 먼저 날아온다. 무슨 일인고 하니 비 오기 전 옥수수를 땄으니 뉴슈가를 사 오란다. 옥수수 삶는 농부 아빠의 비법의 가루. 뉴슈가. 농부 아낙이 마트에서 출발하기 전에 꼭 통화를 해야 했던 다급한 볼일이다. 비법의 가루도 하나 챙겨 들고 집으로 간다. 오후에는 옥수수를 삶아주려나 보다. 마트에 두세 개씩 포장되어 파는데 하나 집어 들고 오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옥수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평생 농사짓는 부모 밑에서 옥수수, 감자는 원 없이 먹고 컸다. 그래도 남이 삶아 파는 옥수수, 커다란 찜기 옆 수증기 가득한 봉지에 몇 개 든 옥수수를 지나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는 먹어줄 수 있는데... 집에 가서 농부 아빠가 삶아 주는 옥수수를 먹어야지 하며 꾹 참았다.


옥수수를 얼마나 땄어?

농사 바구니 하나.


그렇다. 농사 바구니 하나 가득 옥수수가! 그걸 오늘 다 삶아야 하는 것인가 하니 내일까지 삶는단다. 여름비 내리는 오후 옥수수가 삶아지고 있다. 빨리 삶아져라. 늦게 심어 늦게 먹는 옥수수도 맛있다. 비도 많이 늦은 만큼 더 반갑다. 빗소리도 좋고 구수한 옥수수와 더불어 달달한 뉴슈가 향이 선풍기 바람에 실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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