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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근영 Dec 22. 2024

팔이 아파서

말로 하는 집안일

왼팔이 아프다. 어깨 팔 손목까지 아프다. 밤새 저릿저릿한 느낌이 계속된다. 팔이 아파 움직일 수가 없다. 쉬는 게 최고. 며칠 엄살을 부리다 상태가 안 좋아지니 짜증이 올라온다. 하루 쉰다고 나으면 좋겠지만 그럴 리가 없다. 약통에 있던 진통제를 찾아 한 알 먹었다. 한 잠자고 일어나 밥을 했다. 보조 요리사 복이의 실수가 내내 거슬린다. 아프지 않고 짜증이 나는 걸 복이에게 다 풀어버렸다.


팔이 아프다고 하니 달복이가 그랬다.

엄마 저녁은 호빵으로 먹으면 안 될까요?


복실이가 말했다.

엄마 그냥 넣고 푹 끓이는 것으로 먹어요.

아픈 팔을 주물러 준다고 했다. 아픈 왼팔 말고 오른팔에 와서 자꾸 들러붙었다.


아이 말대로 닭을 넣고 야채를 넣고 푹 끓였다. 밥을 먹고 나니 설거지가 걱정이다. 남편에게 설거지를 미루고 편안하게 앉았다. 설거지 뒤처리가 엉망이다. 그러곤 설거지를 다 했다며 소파에 앉아 게임을 시작했다. 복이와 둘이 앉아 시작한 지 한참 되었다. 느릿하게 방에서 기어 나오는 복동이를 불렀다.


하나하나 일일이 지적해서 시켜준다. 말로 하는 집안일이라면 자신 있다. 김치통을 냉장고에 넣어줘. 냄비 뚜껑을 닫아줘. 한쪽으로 밀어줘. 행주를 빨아서 싱크대 위를 닦아줘. 수세미에 퐁퐁을 묻혀. 개수대를 닦아줘. 물을 뿌려줘. 설거지 바구니도 닦아줘. 헹궈줘. 음식물을... “복아! ” 복이를 부르며 도망가는 복동이. 한숨을 쉬며 돌아온 복동이에게 손을 말리라고 하였다. 어머니의 말씀을 안 듣고 고무장갑을 끼었다. 젖은 손이 기다란 고무장갑에 안 들어가자 다시 동생 복이를 불렀다. 복이는 게임 중이라 올 수 없었다. 아빠와 같은 팀이라 절대 올 수 없었다. 고무장갑이 안 들어간다고 다급하게 말하는 복동이에게 아빠는 그럼 그대로 두라고 하였다.


말로 하는 설거지 뒷정리 꽤 할만하다. 머리가 좀 지끈거리기는 한다. 안 보여야 지시사항이 줄어들 텐데 내 책상은 싱크대에서 두 발자국 떨어져 있다. 싱크대를 정면으로 보고 있으니 주부의 책상으로 이만한 안성맞춤이 세상에 있을까. 아직 치워야 할 것들이 몇몇 눈에 걸리지만 오늘은 이만 눈을 감기로 한다.


복동이는 쌩하니 아빠와 복이 옆으로 가 앉았다. 다 큰 남자 셋이 앉은 소파가 푹 꺼졌다. 그들은 다른 세계로 이미 넘어갔다. 설거지나 싱크대 정리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한다. 몸이 아프니 그 말이 뭔 말인 줄 알겠다. 정신이든 몸이든 건전해야 만사가 편안하다. 내일 아침엔 병원에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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