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잔을 씻어내다

by 눈항아리

묵직한 액체가 목구멍으로 흘러들었다.

거친 땅의 흙내음 따사로운 햇살내음

자유로운 바람내음 농부의 땀내음

한 모금씩 머금어 집어삼킨다.

과거는 빈 잔에 묵직한 갈색의 발자국을 남겼다.


시간을 새기듯 세상과 어울렸던 자리

텅 비어버린 공간 끝에 남긴 가장자리 얼룩

미련을 아로새긴다.

깊숙한 바닥 물기 어린 진득한 집착

가파른 벽면 투명하게 번지는 눈물이 아롱진다.


핑크빛 천진한 그녀

무지막지 세찬 물세례를 퍼붓는다.

불린다.

묵은 때라 치부한다.

문질러 씻어낸다.

부드럽게 땟자국을 벗겨낸다.

거친 천은 살갗을 상하게 하기 마련이다.

고운 천으로 살살 닦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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