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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재킷을 처음 입어서

2024. 12.27

by 눈항아리 Mar 0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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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이는 중1이다. 처음으로 교복을 입고 등교했다. 겨울 방학을 열흘쯤 앞둔 날이었다. 크게 맞춘 교복 바지 길이가 껑충했다. 와이셔츠를 차려입고 재킷을 걸친 아이의 모습이 예뻤다.

그런데 복이는 늘 입던 체육복에 길들여져 불편하기만 했나 보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교복 재킷을 벗어 가방에 넣었다. 교복을 맞추고 처음 입은 재킷을 코딱지만 한 가방에 넣었다. 재킷의 안부가 궁금하였으나 내 눈으로 본 것이 아니니 침묵하였다. 설마 버리지는 않았겠지 하였다.

이틀이 지났다. 빨래가 넘쳐흐르던 날을 지나 세탁 바구니 바닥을 보겠다며 세탁물과 씨름을 하던 중이었다. 세탁 바구니 저 밑바닥에 마구 구겨진 커다란 잿빛 솜뭉치와 같은 옷이 발견되었다. 그건 한 번도 빨래터에서 본 적이 없는 종류였다. 부피가 큰 옷을 빨래 바구니에 넣기 위해 알차게 구겨 꾹꾹 누른 흔적이 역력했다. 빨래가 양껏 쌓여 위에 세탁물을 올려놓은 누군가가 또 꾹 눌렀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반듯한 옷매무새는 온데간데없는 교복 재킷이 발견되었다.

세상에나! 복아!


어이가 없었다. 복이가 옆에 있었다면 잔소리를 바가지로 마구 퍼서 부어줬을 텐데. 교복 마이를 한 번 입고 빠는 사람이 대체 어디에 있을까.

여기 우리 집에 있습니다.


세탁 바구니에서 이틀 묵은 교복 외투를 꺼내 탈탈 털었다. 이틀이 아니라 천 년은 묵은 것 같은 모양새다. 세탁기에는 절대 돌릴 수 없다. 세탁소에 보내야 할까 생각하며 우선 옷걸이 하나를 찾아와 걸어 두었다. 그래도 걸어두니 구김이 그리 심하지는 않다며 마음을 다스렸다. 뭐 묻은 것도 아닌데 왜 세탁 바구니에 처박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온 복이가 어젯밤 교복을 찾았다. 세탁 바구니에 구겨 넣은 그 교복을 빨았냐는 의미다. 다음날 입고 가야 한다고 했다. 부글거리는 마음을 잠재우며 그 물건이 옷걸이에 걸려 방에 있다고 일러주었다. 고운 미소를 지으며 재킷은 한번 입고 빠는 것이 아니라고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다음엔 가방에 쑤셔 넣지 말고 입고 오라고 말해 주었다.

복이는 모른다. 재킷이 빨렸는지 먼지를 대충 털고 손으로 구김을 펴 옷걸이에 걸려 있는 건지 어쩐지 알지 못한다.

체육복만 입던 학교에 왜 교복을 차려입고 가는 걸까. 요즘 축제 기간이다. 지난번엔 옷을 맞춰 입고 춤을 췄다. 이번엔 바이올린 연주를 한다고 했다. 교복 재킷은 무대 의상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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