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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제작 뚝딱! 점적호스  말이

맥가이버 내 님

by 눈항아리 Mar 24. 2025

점적호스는 꺾이지 않게 잘 말아놔야 한다. 꺾이면 구멍이 난다. 구멍으로 물이 뿜어져 나온다. 쓰려면  물을 틀어놓고 새는 곳을 찾아 구멍을 메워야 한다. 구멍이 많이  나면 일일이 수리하기 힘들다. 꺾이지 않게 길게 늘어놓을 수 없으니 잘 말아야 한다.


나는 제초매트를 걷고 남편은 호스를 걷는다. 일은 안 하고 또 뭔가 만든다. 공방 앞에서 뚝딱 거리더니 이번엔 ‘자체제작 뚝딱! 점적호스 말이’를 제작해 왔다.


처음에는  파이프 하나를 잘라 손잡이만 달아왔다. 허술해 보였다. 구멍 세 개 뚫린 시멘트 블록을 세로로 놓더니 중간 구멍에 파이프를 걸친다. 그리고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힘껏 돌린다. 마구 돌린다. 호스를 손으로 감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한 줄 감고 다시 만들기 하러 가시는 우리 님.


이번에는 파이프 끝에 전동 드릴을 붙여 왔다. 매번 봐도 정말 신기한 솜씨다. 맥가이버 아저씨는 왜 이런 고급 기술을 가지고 이 황량한 들판에서 농사를 짓고 있을까. 드릴 버튼을 누르고 단 20초 만에 점적호스 한 줄을 감았다. 나는 제초메트를 걷다 말고 비디오를 찍고 있었다. 하나의 파이프에 줄줄이 감기는 까만 호스가 배불뚝이가 되어갔다.


감기의 명수 납셨다.



몇 번 반복을 하더니 잘못된 점을 자체적으로 깨달았다. 시멘트 블록에 쓸린 호스가 다 못쓰게 되었단다. 한 줄 정도 버릴 각오를 하고 계속 감는다. 끝쪽에 감기지 않도록 조심한다. 양껏 감았는지 들고서 창고로 간다. 가더니 큰 소리로 구시렁 거린다. 드릴을 빼다 호스가 다 풀렸단다. 망연자실! 마당에 서서 감아놨던 점적 호스를 다 풀고 있다. 급기야 바닥에 패대기친다. 수리 안 하고 버리겠단다. 가위를 가지고 와  짧게 자른다.  


그렇게 우리는 제초 매트에 이어 점적 호스도 버리기로 했다. 4년을 쓰면 알뜰히 잘 썼다고 한다. 고생했다. 호스야.


고생이 많소,
맥가이버 양반.


자체제작 점적호스 말기


그렇게 남편에게 딸려간 점적호스는 결국 가위질을 당했다. 그리고 내 님은 다시 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점적호스 반 정도는 밭에 그냥 놔둔 채였다.


sunday farm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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