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트럭 타고 두릅밭 살피러 갔던 남편이 어느새 돌아와 있었다. 지난주까지 안 쓰던 창 너른 농사 모자를 쓰고 밭 한가운데 서 있다. 벌써 까만 제초 매트 한 줄을 혼자 다 깔았다. 날 부르지 그랬냐며 제초매트 고정핀을 꼽는 남편을 따라 나도 몇 개 쇠꼬챙이를 들었다. 왜 나왔느냐 그런다. 감자 한 줄이라 내 손이 필요 없나 보다. 그래도 남편의 반대편 끝에서부터 고정핀을 박아 나간다. 제초매트는 지난해 감자 심을 때 썼던 매트다. 올해 3년째 쓴다.
감자 가지러 간 남편을 따라가다 말고 밭에서 서성였다. 구르는 퇴비 옆에 존재감 없이 핀 노란 들꽃에 정신이 팔렸다. 좁쌀 같이 작아 가까이 다가가 앉아서 보아야 꽃잎이 보인다. 꽃다지. 봄의 민들레가 필 무렵 들판에 무수하게 피어나는 들꽃이다. 작기도 작다. 좁쌀 같이 앙증맞은 노랑 꽃잎이 점점이 달렸다. 흙밭 이곳저곳을 수놓은 들꽃 구경은 주말 농사의 재미다. 봄길 수놓은 벚꽃은 차 창문으로만 보고 진짜 꽃구경은 밭에 쭈그리고 앉아서 한다. 한참 꽃구경을 하는데 남편이 부른다. 할 일이 없다면서 일을 시킨다. 감자 구멍이 몇 개인가 세어 보란다. 한 발걸음에 구멍 두 개씩 세며 끝에서 끝까지 걸어간다. 모두 75개다. 감자 자르는 내 님에게로 간다.
지난해 수확한 감자에 싹이 왕창 났다. 이것을 심어도 될까? 싹이 났는데 더 잘 자랄 것 같기도 하고 씨감자가 따로 있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지난해엔 가게 옆 구둣방 사장님이 수미감자 씨감자를 한 박스 주셔서 심었었다. 씨감자나 마트감자나 같아 보이는데 뭐가 다른 걸까. 지금은 싹이 나 못 먹는 감자이지만 버리기는 아까우니 우선은 쪼개서 심었다. 농부인 내 아버지가 그렇게 심는 건 한 번도 못 봤다. 씨감자를 심는 이유가 분명 있을 테다.
감자를 쪼개 심는 일은 금방이다. 감자는 좀 깊게 심어야 수확량이 많단다. 나는 대충 구멍 파고 흙만 대충 덮어 놨는데 감자 심기 전에 공부를 좀 할 걸 그랬다. 그럼 얼마나 깊게 심느냐? 찾아보시라 공부하시라. 미리미리 공부 좀 하고 심을 걸 그랬다.
마트에서 감자를 사 왔다. 감자에 싹이 났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감자 싹에는 독이 있으니 먹으면 안 된다. 그런데 어릴 때 봄이 되면 감자싹을 없애고 먹었다. 죽지는 않았다. 많이 먹어야 죽는다. 그런데 그것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 어린이나 노약자는 작은 독에도 위독해질 수 있다. 초록으로 변한 감자도 먹으면 안 된다. 조금만 변했다면 제거하고 흐르는 물에 잘 씻어 먹는다. 굳이 독을 먹겠다면 드시라. 적은 독은 몸속에서 해독이 된다. 그러나 적은 독이라도 찜찜하다면 먹지 마시라. 그럼 심으면 안 될까?
지난해 씨감자를 심어 수확했다. 노란 농사 바구니에 넣어 대충 포장을 덮어 창고에 두었다. 겨우내 먹고 봄이 되니 싹이 났다. 싹이 난 감자 심으면 안 될까? 심어도 된다. 내가 심는다는데 농부 마음이지 누가 뭐랄 것인가. 그러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씨감자가 아닌 감자를 심을 경우 수확량이 준다. 계속 지난해 심었던 감자를 뒀다 다음 해 심는다면 해가 갈수록 수확량이 줄어 한 해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 먹으려고 조금 심는 건 별 상관이 없겠지만 그래서 전문 농사꾼이라면 절대 그냥 싹 난 감자를 심지 않는다.
하나 더, 감자는 바이러스에 취약하다. 바이러스가 있다면 다른 감자에게 전염되는 건 순식간이다. 그래서 병든 감자를 발견하면 빠르게 격리해야 한다.
씨감자는 바이러스가 없는 상태로 만들어진다. 씨감자를 심는 가장 큰 이유 같다.
그런데 씨감자도 바이러스가 있을 수 있단다. 어떻게 하라는 건지 원. 그러니 씨감자를 받으면 즉시 감자를 잘라 확인을 하고 썩은 것은 버리고 상자를 바꿔 줘야 한다. 병 없는 감자를 키우기 위해 건강한 씨감자를 잘 고를 필요가 있다. 나의 결론은 씨감자도 복불복. 그러나 먹던 감자보다 안 아플 확률이 훨씬 높다.
감자를 병 없이 키우기 위해 심기 전 처리를 해야 한단다. 칼을 소독하면서 감자를 자른다. 뜨거우면 감자가 화상을 입을 수 있으니 조심하란다. 감자의 자른 단면은 또 바이러스에 취약하다. 단면을 며칠 잘 말려 자연 치유를 시키거나 재나 유황으로 소독을 해야 한다. 그래야 감자가 병들 가능성이 준다.
우리는? 그냥 심었다. 매년 남편이 유황 소독을 했는데 귀찮아서 건너뛰었단다. 심는 건 농부 마음인걸 뭐라 할 수 없다. 올해 우리의 감자 심기는 대략 난감하다. 미리미리 공부 좀 하고 심을 걸 그랬다. 알아도 안 할 수 있고, 몰라서 못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알아야 대처를 할 수 있다. 농사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 감자가 잘 자라줄 지 의문이다. 그래도 잘 자라라고 비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다 심어 놓은 것을 파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감자는 소소한 반찬이 된다. 감자 나오는 철이 되면 천지 사방에 감자가 나오는데도 부러 심는 이유는 내 손으로 건강하게 키운 감자를 먹기 위해서다. 키우는 재미도 있지만 내가 움직인 만큼 더 건강한 먹거리를 먹을 수 있다. 농약, 제초제, 화학 비료가 없는 건강한 농산물, 그건 고된 노동의 대가다. 잡초와 씨름할 걸 생각하면 지금부터 벌써 무섭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건강하게 먹기 위해 키운다.
감자를 심기 전에 토양 살충제와 토양 제초제를 뿌려야 한다는 글들을 많이 봤다. 과연 인체에 해가 없는 살충제와 제초제가 있을까? 살충제, 제초제는 선택이다. 그건 농부의 선택이다. 토양 살충제와 제초제는 흙속에 있는 해충을 죽이고 풀씨를 죽여 상품성 있는 작물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소비자가 좋은 상품을 원하기 때문이다. 좋은 상품이 무언지 생각해봐야 한다. 농약 감자를 먹을 것인지 무농약, 유기기농 감자를 골라 먹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게 소비자가 해야 할 선택이다. 작은 땅에, 혹은 화분에 먹을 것을 조금씩 심어 먹는 게 가장 믿음직하다.
농약은 쌓인다. 초등학교 때 배운 상식이다. 가장 상위 포식자인 우리 인간은 더욱더 많은 농약을 몸속에 쌓아가고 있다. 먹기 위해 농사짓는 우리 부부는 그래서 살충제 대신 벌레에게 조금 나눠주기로, 제초제 대신 풀과 싸우기로 했다.
‘감자나 잘 심지 그랬어. 응? 미래 먹거리? 감자 심는 두메산골에서 무슨 미래 먹거리야? ’ 마음의 소리~~
감자 75개 심은 두메산골 시골 농부의 소소한 이야기다. 우리 부부는 일요일에만 농사짓는 주말농부다.
sunday farm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