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차한 변명 늘어놓다

핸드폰 일기

by 눈항아리

4월 25일에 쓰다.


핸드폰 총 사용시간 5시간 44분.


스크린 타임 5시간이 넘은 것을 확인했다. 저녁 8시였다. 핸드폰을 멀리 치워버렸다. 마음을 정했다. 굳은 결심. 나는 과연 실행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이제 끝났다! 처음에는 포기, 이후에는 단념, 이후에는 꼼수가 꼬물꼬물 꼬리를 물고 나왔다.

핸드폰을 볼 수 없다고 정하고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었다. 뒤집어 놓았다. 눈에 밟힌다. 핸드폰 거치대에 자꾸 손이 간다. 눈도 간다. 빈자리가 허전하다. 왼손에 워치를 찼다. 괜찮다. 나의 자리에는 아이패드가 남아 있다. 남편의 아이패드에서는 책을 주로 읽으니까. 맘껏 볼 수 있다. 큰 글씨도 좋다. 핸드폰 같은 존재는 아니지만 비슷하다. 내 손안에 쏙 들어오는 아담하고 딱 맞춤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사용할만하다.

그렇게 핸드폰을 보냈다. 저 멀리. 1미터 밖으로.

예방 차원에서 찬 워치가 위안을 준다. 까만 바탕에 번쩍거리는 숫자가 여러 개 있으니 좀 위안이 되었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었다. 말리가 나오는 대목이었다. 자꾸 핸드폰이 생각났지만 참을 수 있다. 오늘은 더 못 본다고 단념을 하니 마음이 좀 안정되는 것도 같았다. 나에게는 지원군이 많다. 전자책, 펜과 종이, 종이책, 자판. 모두 준비되어 있다. 핸드폰 하나면 다 되는데 많이 번잡스럽기는 하다.

한참 참았다 생각했다. 그런데 핸드폰을 다시 연 시간은 9시였다. 고작 한 시간. 그 애를 쓰고 방비를 했는데 고작 한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다.

핸드폰을 다시 열자 남편이 핸드폰을 안 본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잔소리를 했다. 아들의 안부가 궁금해서 그런 거라며 궁색한 변명을 했다.

“복동이한테 문자 왔나 보는 거야. ”

나는 남편에게 거짓말을 하고 짧은 시간 볼 건 다 보고 핸드폰에서 나왔다. 중증이 확실하다.

처음 남편에게 오늘은 5시간 핸드폰을 봤으니 그만 보겠다고 선언하자 남편의 반응은 굉장했다.

“5시간이나? 진짜 심각하네. ”

이어지는 나의 말에 그는 귀가 코가 다 막혔다.

“어제는 10시간이었어.”

그러니 한 시간 만에 핸드폰을 다시 열었을 때 잔소리를 안 하고 배기겠는가.

“안 본다면서! ”

그가 내게 소리를 쳤다. 옆에 든든한 감시자가 생겼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귀찮아졌다고 해야 할지.



24일 아침의 노력으로 핸드폰에 종속된 나의 심각한 실태를 알 수 있었다. <먼 북소리>를 읽었다. 책을 읽으며 계속 핸드폰을 찾는 나를 보았다. 그래서 핸드폰 칸을 따로 만들었다. ‘핸드폰이 보고 싶을 때 채우는 공간’을 독서 기록 오른쪽에 만들었다. 내가 무슨 이유로 핸드폰을 찾는 것인지 기록했다.

책에 집중할 때까지 한쪽을 넘기지 못하고 핸드폰을 찾았다.

217쪽 , 거치대를 보았다. 비어있다. 팔을 쭉 뻗어야 겨우 핸드폰에 닿을 수 있다. 귀찮다. 아이패드를 켤까 생각했는데 패드가 순간 밝아졌다. 밝은 빛을 보니 순간 기분이 좋아졌다. 터치할까 말까 망설여졌다.

218쪽, 책 한쪽을 채 넘기지 못하고 또 두리번거리며 핸드폰을 찾는다. 새로운 내용으로 넘어갈 때가 위험하다. 그의 책에 위스키가 나와서? 술이 나와서? 꿈의 세계가 그리 반갑지 않은 무거운 내용이라서? 그래서 핸드폰을 찾은 걸까?

219쪽, 섰다 앉으면서 바로 핸드폰을 찾아 빈 거치대에 손을 올리는 나를 발견했다. 핸드폰을 지정 자리에 두는 것은 위험하다. 앉은자리, 손이 닿는 곳에 절대 두지 말자.

235쪽, 시계를 보았다. 핸드폰이 있었다면 분명 시계만 보지는 않았을 테다.

241쪽, 워치가 핸드폰을 덜 찾는데 일부분 도움이 된다. 시계를 자주 본다.

오늘의 핸드폰 결심

3시간 사용!

이게 많다고? 글만 써도 이 시간이 나온다. 나는 이렇게 핸드폰 사용을 위한 구차한 이유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5월 15일의 평가


굳은 마음을 먹었다면 핸드폰으로 쏠리는 흔들리는 마음을 굳이 글로 표현하지 말자.

핸드폰을 보기 위해 거짓말하는 나를 발견했다.

감시자가 생긴 것은 좋은 일인데 내 속 마음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귀찮다니!

책을 읽을 때 모든 기계를 책상에서 치우도록 하자. 책 한쪽에 집중을 못하는 심각한 상태다.



나는 핸드폰 일기를 쓴다.
나는 핸드폰 사용의 모범이 되겠다.

나는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다.
나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나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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