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초 핸드폰 사용을 줄이자 다짐했다. 다짐으로 안 되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짝 며칠 글을 써 내려가고 미루고 덮어두었다. 핸드폰을 줄여보자 금연선언과 같은 공개 선언을 하고서도 말뿐이었다. 그저 스크린타임에 표시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또 며칠 노력했을 뿐이다. 그리고 온갖 잔머리를 굴렸다. 그래서 매일 일기 쓰기를 시작했다. 이것도 며칠 갈지는 모르겠으나...
<핸드폰 일기>
4월 24일 아침에 쓰다.
4월 23일 10시간 5분 사용
10시간이라니 심각하다. 매일, 수시로 나의 핸드폰 사용 실태를 파악하고 인지하고 반성하고 다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시간을 짜내도 없을 것만 같았던 나만의 시간이 10시간이 된다니! 나는 무한 시간 짤순이다. 시간의 제왕이다. 놀랍다. 더욱 놀라운 것은 100회 정도 핸드폰을 깨운 것이다. 6분에 한 번 꼴로 핸드폰을 열어본 것이다. 까맣게 꺼진 핸드폰의 꼴을 못 보는 것이다.
유튜브는 잘 안 보는데, 그렇게 생각했는데, 무언가에 꽂히면 무한 시간을 투자할 수도 있을 듯하다. 3시간을 넘어가다니! 새로 나오는 귀신 드라마가 너무 재미있었다. 로맨스, 판타지, 호러, 사극을 섞어 놓은 드라마다. 귀신물은 무서워서 못 보는데 전혀 안 무섭다. 1, 2회 영상을 다 보고 다음 회차 미리 보기를 얼마나 찾아보았는지 모른다. 본방을 사수하자. 핸드폰 주인님의 노예가 따로 없다.
나 스스로도 심각하다 생각했으니 어제 연재 버튼을 누른 것이겠지. 내면의 경고등이 반짝였겠지. 그래 이제부터 해보는 거야. 다시 다시 다시. 반복해서 놓아주는 거야. 핸드폰 주인님을 놓아주고 나도 해방되는 거야.
그런데 아침 7시 현재 벌써 핸드폰 사용시간 1시간 20분. 오늘도 망한 건가? 아직 괜찮다. 어제 10시간이었으니 어제보다는 적으면 될 것 아닌가. 한 번에 다 이룰 수는 없는 법이다. 천천히 점진적으로 줄여가자.
4월 24일 9시 30분에 쓰다.
핸드폰을 조금이라도 줄이면 이렇게 아침 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 일 다 하고 놀기로 하자.
운전 중 잘 참았다. 어쩔 수 없었다. 가방 속에 핸드폰을 넣어두니 꺼낼 수가 없었다. 지퍼 주머니에 넣어두면 더 좋다. 그러나 아이들 찬스가 있으니, 핸드폰 문자를 확인한다는 둥의 핑계를 대며 뒷좌석에 앉은 아이들에게 핸드폰을 꺼내달라고 한 적도 많다. 그런데 오늘은 절대 안 그랬다. 잘 참았다.
출근 후 바로 사진기가 필요하다. 모란이 활짝 피었는데 안 찍을 수 없었다. 영산홍이 화사한데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도 일하면서 유튜브를 틀지 않았다. 펼쳐져 있던 책 <걸리버 여행기>를 읽었다. 오늘의 독서 평 <걸리버 여행기>는 인간 본성 비판의 최고봉이다. 금서로 지정된 이유가 다 있다. 돌려 말하기를 잘 못하는 작가 때문이다. 그렇게 드러내고 사람들 욕을 하니 금서로 지정될 밖에. 인간의 탐욕은 지저분하다. 돼지와 같다. 먹는 욕구뿐 아니라 보고 싶고 누리고 싶은 욕구도 똑같다. 나는 돼지가 아니다. 나는 이성이 있는 존재다.
핸드폰을 탐하지 말라.
4월 24일 오늘의 목표
핸드폰 사용시간을 총 5시간으로 줄여보자.
(안 쓰는 게 아니고 5시간!)
글을 쓰는 속도를 더욱 높여야겠다. 타자 연습을 해야 할까?
(핸드폰 사용 시간을 줄이기 위해 타자 연습을 할 이런 참신한 생각을 다 하다니! 이런 꼼수 쓰면 안 된다. )
검색은 남편의 아이패드를 사용하자. 내 시간으로 안 잡힌다.
(이런 꼼수도 쓰면 안 된다.)
나는 핸드폰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생각이 대체 있는 것일까? 나는 잔머리 대마왕이 되어가고 있었다. 굳은 결심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매일 확인하자던 ‘핸드폰 없는 시간과 공간’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를 믿는다더니 그렇게 찰떡같이 믿고 있던 나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잘한 일은 크게 칭찬하고, 못한 일은 얼른 살짝 덮어버리기 바쁜 나의 핸드폰 사용기. 줄이자 말만 번지르르하게 해 놓고 하나씩 예외로 인정되는 건 왜 자꾸 늘어나는지... 창피하다.
고민했다. 이것을 계속 써야 할까 말아야 할까. 관두고 싶기도 했다. 연재 마감 시간이 가까워 오자 그래도 시작을 했으니 다시 해 보자 작은 용기를 내본다.
‘나 눈항아리는 금폰선언을 한다.’라고 외치고 싶으나 어찌 핸드폰을 금할 수 있겠는가.
대신
나는 2025년 5월 14일 다시 공개 선언한다.
나는 핸드폰 일기를 쓰겠다.
(이전에 빼먹은 많은 날들은 제외한다.)
나는 우리 가족 핸드폰 사용의 모범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