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짓는 연기가 올라온다. 굴뚝은 두 개. 굴뚝은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공장 굴뚝이 가장 선명하게 뇌리에 박혀 있다. 하얗고 빨갛고 긴 원통형 모양의 굴뚝에서 올라오는 회색 연기. 그런 산업 지대의 공장 굴뚝이 내 주방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그럼 초가지붕에서 올라오는 연기? 사실 밥 짓는 연기를 볼 만큼 나는 나이가 많지 않다. 밥 짓는 연기는 무슨, 전기밥솥이 아니면 밥을 못 하는, 나도 나름 신세대였다.
그럼 그 연기는 대체 무슨 연기란 말인가. 주방 전기 레인지 위 스테인리스 냄비에 투명 굴뚝(?)이 생겼다. 회색 연기가 폴폴 올라온다. 수증기라면 동그라미 모서리 사방에서 냄비 뚜껑을 불규칙적으로 들썩들썩 들어 올리면서 뿜어져 나올 텐데. 뚜껑을 움직일 힘은 부족하나 큰 줄기와 작은 줄기 두 개로 힘차게 솟구치는 저것은 굴뚝에서나 나올 법한 회색 연기가 분명하다.
이 사람 또 일 냈네, 일 냈어.
아침 밥하며 책상에 앉아 있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또 뭘 태워 먹었네, 태워 먹었어.
냄비 뚜껑을 열었다. 깜장으로 변한 바닥이 보인다. 젓가락으로 감자를 콕 찍어 들었다. 깜장과 고동의 중간쯤이다. 색깔을 보아선... 먹을까 말까... 망설여진다. 왜 늘 나는 이런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것일까. 그냥 구운 감자라고 우겨보자. 냄비째 식탁에 올렸다. 감자를 하나씩 배분했다. “엄마 냄비가 왜 이래?” 누구도 하나 이상 안 먹었다. ‘얘들아 구운 감자야!’ 속으로 외쳐보았지만 이미 냄비 바닥이 새까만 걸 본 이상 우긴다고 탄 것이 구운 것으로 바뀌지 않았다.
냄비는 절대 타지 않았다. 한 겹 ‘구움’으로 코팅된 것이다. 밤에 돌아와 부드러운 수세미로 한 번에 세척이 완성되었다. 아주 운이 좋은 날이다.
냄비가 탔다. 아니 한 겹 구워졌다. 태운 것이 아니라 구워져서, 그래서 감자가 맛있었다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서 잊힌 기억들>을 쓰는 이유는 깜빡하지 않기 위해서다. 잊지 않고 다음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전기레인지 위에 올려놓고 잊는 경우가 많다. 화재 예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기레인지에 무엇을 올려놓을 때, 타이머를 꼭 설정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