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왜 태운 거야? “
아들에게 아침부터 잔소리를 들었다.
얼갈이를 한 솥 데쳤다. 한 줌 덜어 냄비에 넣었다. 라면 하나 끓이는 긴 손잡이가 달린 냄비, 아침의 된장국으로 곧잘 사용하는 냄비다.
파, 마늘, 무, 버섯, 멸치, 다시마 넣고 된장, 고추장도 풀어 넣은 다음 푹 끓였다. 계란찜도 아닌데 봉긋하게 냄비 위로 거품이 올라온다. 노란 계란찜은 노력해도 안 되더니. 하얗고 빨간 거품이 보글보글 끓어 넘치기 전에 냄비를 가스레인지에서 구출했다. 양이 많은가 보다.
큰 냄비로 옮겼다. 냄비가 크니 마음이 넉넉하다. 믿음직스러운 냄비를 불 위에 올렸다. 큰 냄비이니 더 넣어볼까. 단백질 추가, 두부를 하나 다 썰어 넣었다. 고춧가루를 솔솔 뿌리고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열심히 타자를 쳤다. 나는 아침의 글쓰기 시간을 사수해야 한다. 신들린 손가락이 자판 위에서 춤을 췄다. 글을 쓸 때면 내가 만들어내는 글 세계의 조물주로 등극한다. 하하하. 이 기분에 매일 인생이라는 녀석에게 찌들어 살면서도 글을 쓴다. 껌뻑 껌뻑 노란 커서가 내 손과 마음을 계속 붙잡고 있었다.
어디선가 진하고 구수한 냄새가 올라온다.
냄비가 들썩인다. 증기가 만들어내는 힘은 강력하다. 냄비와 뚜껑 틈새를 비집고 수증기가 올라온다. 과연 수증기 일까? 뚜껑을 눈으로 보고서야 구수함과 탄내음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하는 야릇한 냄새가 코까지 전달된다. 설마 설마 연기인가? 된장국을 태웠을까. 정말 이번엔 하다 하다 된장국을 태웠을까? 뚜껑을 열었다. 국물이 없다. 내 된장국! 20분 밖에 안 지났는데 어떡해! 찌개도 아닌 것이 빡작장도 아닌 것이 정체불명의 무엇으로 변신한 된장국. 쪼그라든 된장을 나무 주걱으로 살살 뒤적였다. 두부가 바닥에 눌어붙었다. 이 요리를 ‘된장 누룽지’라고 하면 안 될지... 어떻게 살릴 수는 없을까. 주걱으로 건더기를 살살 조심해서 들어 올렸다. 먹을 수 있을까. 과연.
태운 부분을 피해 살살 긁었다. 건더기를 대충 퍼서 가족에게 배식했다. 식판에는 밥과 된장 건더기 조금이 나란히 담겼다. 평소 작은 냄비에 끓이면 딱 알맞은 양이었는데 여섯 식구 먹기에는 살짝 모자라다. 그래도 모두 된장 건더기에 맛있게 비벼 먹었다. 된장 비빔밥이라고 주문을 걸어 보았다. 강된장처럼 짭짤한 맛이다. 그렇게 글 쓰는 주부의 아침은 졸아든 된장국과 함께 쪼그라든 채 시작되었다.
‘그런데 왜 태운 거냐니? 아들, 엄마가 뭘 태울 수도 있지. 왜 태웠는지 정말 궁금한 거야? 이유가 알고 싶은 거야? 아니면 추궁을 하는 거야? 반찬이 없다고 투정 부리는 거야? 엄마는 된장국 한 그릇에 엄청난 영양소를 골고루 담아내려고 노력했을 뿐이야. 두부마저 안 넣고 태웠어봐. 비벼 먹을 건더기조차 안 남았을 수 있다고. 콩단백질 두부는 오늘 최고의 선택이었어. 글은... 조금 줄여보도록 할게. 죄송합니다. ’
된장국을 태웠다. 정말 아주 조금만 태웠다. 태우고 반성하고 있다. 잊지 않기 위해 남기는 글 <나에게서 잊힌 기억들>
작은 냄비는 넘칠 수 있다.
큰 냄비도 태울 수 있다.
눈앞에 있어도 태울 수 있다.
냄새는 시력이나 청력보다 늦게 도착하는 걸까? 평소 눈을 믿지 말자 다짐하곤 하는데 코도 믿지 말자.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렸다면 시간 알람을 해놓자.
나를 믿지 말자. 제발.
나는 된장국도 태울 수 있는 능력자다.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딴짓하지 말자.
글도 책도 용납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