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서 잊힌 기억들
마감 청소가 끝났다. 쓰레기봉투를 잘 묶었다. 분홍색 일반 쓰레기봉투다. 봉투가 가득 차면 좀 바쁜 날, 봉투가 헐렁하면 매출이 영 꽝인 날이다. 쓰레기 봉지가 헐렁하다 못해 빈약하다. 가볍기가 한 손으로 달랑 들고 흔들며 갈 수 있을 지경이다.
20리터 쓰레기를 봉투를 들고 출입문을 나선다. 20도까지 오르던 기온이 갑자기 0도로 떨어진다고 했다. 다시 내려간 공기가 꽤 차다.
찬 바람은 눈 쌓인 하늘의 끝 험난한 산등성이에서 시작되었다. 넓디넓은 까마득한 공간을 가로질러 옆집 지붕 위에 앉았다. 앙상한 감나무 가지를 한번 흔들어 놓고, 깜깜한 골목길 아래로 훅 떨어져 담장을 내달리다 열린 쪽문 하나를 발견하고 한꺼번에 훅 몰아쳐 마당으로 들어왔다. 현관문을 막 나선 나를 발견하고 ‘옳다쿠나, 저 콧구멍으로 들어가야겠다.’ 생각을 했을까. 코를 지나 폐부를 찌르는 서늘함이 제멋대로 내 혈관을 빌어 온몸을 돈다.
바람은 자유다.
콧바람 쐬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밤바람이 좋다. 하루 종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노래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바람을 탄다.
바람 기운에 쓰레기봉투를 살랑 흔들며 마당을 지나 골목길로 들어섰다. 까만 골목길은 무서워야 마땅한데 늘 다니던 길이라, 퇴근길이라, 마감을 앞두고 뒷설거지를 하는 밥집들이 하나 둘 잔 불을 밝혀주어 무서움도 바람에 휘 날아갔다. 익숙한 어둠 속 바람을 타고 걷는다.
단비가 내리고 난 후 대기가 눅눅했다. 습을 머금은 바람이 촉촉해서 더욱 기분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100걸음을 걸어 쓰레기 모아 놓는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늘 기다려주는 아주머니가 있다. 불을 밝혀주며 고운 목소리로 말을 걸어준다. 불법투기를 하면 혼내준다는 내용의 잔소리다. 늘 하는 말이라 반짝 켜진 불에 반가움을 표하며 분홍색 쓰레기봉투를 덜렁 들어 노란 통에 넣었다.
앗차!
노란 뚜껑을 닫고선 생각이 났다. 키다리 노란 통은 음식물분리수거함이다. 어째 넣는 쓰레기의 부피가 좀 크다 했다. 금방 다시 노란 뚜껑을 열고 분홍 쓰레기봉투를 꺼내 바닥에 수북한 일반쓰레기 옆에 놓았다.
처음이다.
노란 통에 분홍 봉투를 넣었다. 음식물쓰레기분리수거통에 일반쓰레기봉투를 넣었다. 절대 불법투기는 아니다. 잠시 잠깐 하는 사이에 분홍 봉투가 노란 통에 들어갔다.
자유분방한 바람 때문에, 시원한 바람에 취해, 나도 모르게 그만, 그 축축한 바람을 만나고 기분이 너무 좋아서 그랬다.
처음이겠지 설마.
노랑 봉투만 노랑 통에 넣어야 한다.
분홍 봉투는 노랑 통에 넣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