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sunday farmers

자연과 노동이 준 선물

콩밭 매는 소로의 <월든>을 읽으며

by 눈항아리
일의 속도가 무척 느렸다. 하지만 그 덕분에 콩과 더없이 친밀해졌다.
직접 내 손으로 하는 노동이 따분하고 고되다 하여 결코 무익하다고 말할 수 없다.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정희성 옮김/ 민음사/ 230쪽

자연에서 콩 농사를 짓는 소로와 우리 부부의 농사법의 비슷한 점을 발견했다. 훗. 나는 대단히 멋진 농부가 된 것 같다. 책에 나오는 유명인? 콩밭에서 김매기 하는 소로가 자꾸 생각난다.


나는 계속 물었다. 왜 내가 이런 시골에서 돈도 안 되는 비효율적인 노동을 하는 것인가. 왜 이렇게 느리게 농사를 짓는 것인가. 커다란 기계를 불러 하루 만에 밭을 갈고 거름을 뿌리고, 하루 만에 비닐 멀칭을 하고, 또 하루 만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모종을 심는 농사를 왜 우리는 못하는 건가. 그 답을 소로의 책 <월든>을 읽으며 조금 찾은 것 같다.


그래, 나는 풀 천지이고, 벌레 투성이인 흙밭에서,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직접 내 손으로 밭을 일구며 무언가를 구하고 있었구나. 나는 자연과 노동으로부터 무한히 받고 있었구나.


개똥지빠귀의 시시한 노랫소리,
한 현으로든 스무 현으로든
파가니니의 연주를 흉내 낸 듯한 어쭙잖은 노랫소리가
씨 뿌리는 일과 무슨 관계냐고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재나 석회보다는
녀석의 노래가 더 나았다.
그것은 내가 전적으로 신뢰하는 값싼 웃거름이었다.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 정희성 옮김/ 민음사/ 233쪽


매미 소리, 모르는 새소리를 들으며 쑥쑥 자라는 식물들처럼 나도 함께 나도 자라고 있었구나. 나는 이곳에서 나를 키워가고 있었다.


복수박, 참외 덩굴, 큰 수박

복수박은 뚝 떨어질 수 있어 양파망을 해줬다. 남편과 셋째 달복이가 아침나절에 호박을 따러 갔다가 매 주고 왔단다. 지난해에는 망을 안 해줘서 바닥으로 뚝 떨어지는 복수박을 허망하게 많이도 보내야 했다.


참외는 비 오는 중에 수정이 안 되어 꽃이 많이 떨어졌다. 노랗게 익은 것은 없지만 시퍼런 열매가 크기를 키워가고 있다. 놀라운 속도로 잎이 번지고 있다. 참외는 특히 장수말벌이 좋아하는 먹이다. 조금만 심자 해놓고 매년 이렇게 많이 심는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참외이니까 안 심을 수 없다. 오늘 점심 식사를 하고 어머님은 참외의 안부를 물으셨다.


큰 수박은 빗물을 먹고 엄청 크기를 키웠다. 빠싹 말라 힘없이 쪼그라들어 바닥을 기어 다니던 잎들도 생기를 찾았다. 커다란 수박이 이제는 축구공만 하다. 7월 말 경까지 키워서 수확할 예정이다.


옥수수, 가지, 오이

옥수수수염에 좔좔 기름이 흐른다. 비 온 뒤 더욱 키가 자랐다. 비 오는 며칠 동안 꽃이 활짝 피었는데 남편은 걱정했다. 비를 맞아 수정이 잘 안 되면 알맹이가 드문드문 빈다고 했다. 그래도 키 큰 옥수수를 우러러보는 건 꽤 기분이 좋다. 키 큰 우리 둘째 아들 복이를 옆에 세워두고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고놈 참 잘생겼다. 아들 얼굴에 반한 내가 가끔 복이에게 잘생겼다고 그러면 기분 나빠한다. 제 얼굴의 진가를 모르는 녀석이다.


가지는 이제 마구 열매를 달기 시작했다. 검고 짙은 보랏빛의 열매가 길어지면서 땅에 끌린다. 대를 세워 가지를 위로 좀 올려줘야 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가지 농사는 처음이라 열매가 달린 것만으로도 신기하다. 가지와 호박을 넣고 밥을 해서 간장에 슥슥 비벼먹었다. 남편은 질다고 질색을 하고 나는 소화가 잘 된다고 좋아했다.


같이 심었지만 청오이는 한창이고 백오이는 벌써 끝물이다. 백오이의 쭈글쭈글 늙은 잎이 마지막 열매를 키우기 위해 안간힘을 짜내고 있다. 오늘도 백오이 일곱 개를 따서 어머님께 가져다 드렸다. 어머님은 특히 오이를 좋아하신다. 생으로 수시로 드신다. 그리고 새콤달콤 오이지를 담아 우리 반찬으로 보내주신다. 복이 빼고 모두 좋아하는 반찬이다. 청오이는 길이가 길다. 감자칼로 껍질을 벗기다 너무 길어서 길이를 재봤더니 44 센티미터였다. 도마에 놔두고 복실이가 핸드폰 길이 재는 프로그램을 켜서 손수 길이를 쟀다. 어머님은 청오이로는 오이지를 안 만들어 보셨다며 백오이가 안 나오면 청오이로 오이지를 만들어본다 하셨다.


호박은 너무 많이 나온다. 나누어 먹느라 바쁘다. 그리고 이제는 냉동 국거리로 조금씩 얼리고 있다. 한창 날 때는 많지만 금방 수확철이 끝나고 나면 귀한 호박이 된다.


내가 받고 있는 자연이 주는 무한한 사랑은

내가 내 손으로, 내 힘으로, 내 발로, 나의 노력으로, 나의 노동의 대가로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가족과 이웃과 나누고 있다.


sunday farmers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열매는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