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하라는 가수의 이름을 쓰고, 가만히 생각한다. 건반 소리가 들리고, 플루트 소리가 배인다. 뒤이어 일렉기타가 섞인다. 클래식 음악 구성으로 진행되다 간주에서 록 음악으로 변주되는 생소한 구성. 한국 발라드의 원형이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최루탄의 매운 기운이 가실 무렵, 음반 하나가 발매된다. 작자는 대학에서 클래식을 전공했는데, 조용필이라는 전무후무한 가수의 밴드에서 건반 세션을 맡는다. 악극단과 미8군을 거쳐 이룩한 한국의 대중가요가 서양 클래식의 체계적인 화성과 손을 마주잡는 장면.
유재하는 불행하게도 윤화를 입어 사라진다. 그의 불행은 대중가요에 찬란한 흔적이 된다. 80년대 고도성장의 수혜를 입은 그의 90년대 후배들은 개인, 감성, 습작이라는 이름으로 건반을 누르고 기타줄을 뜯었다. 이들이 한국 발라드의 계보를 이뤘고, 유재하 그를 기리는 음악경연대회가 해를 거쳐 작년 25주년을 맞았다. 담백하고 무심하던 그의 노랫소리, 단순하고 덤덤한 연주, 좋은 가사가 스물 다섯 해동안 변주되었다.
요즘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25주년 기념음반을 듣는다. 뜨거운 80년대와 찬란한 90년대, 혼란과 불황의 2000년대를 거치면서도 유재하의 소리는 건재한 듯 들린다.
어둔 밤. 보이지 않으면서도 빛난다고 믿는, 음악은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