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각별하다. 고단할 때 찾아갈 공간이 있었다. 대개는 카페. 간혹 오락실이나 집앞 편의점에 갔다. 원족으로 한강 둔치에 가기도. 봄가을이면 남산에 올랐다. 회사를 다니거나 학교에 다닐때 사람에 둘러싸이고 치이면 공간으로 갔다. 출근길이나 귀로에서 주저 앉고 싶을 때.
휴일이면 카페에 갔다. 커피보다 시간을 누렸다. 혼자 대여섯 시간을 앉아 있었다. 책을 보고 공상하거나, 일을 꾸미고 글을 쓰는 시간이었다. 적고 보니 시간을 말하는데 공간이 마련해준 시간이다.
태평로 할리스, 신촌 독수리 다방, 호주 애들레이드 치보 에스프레소. 할리스는 못 해도 7년은 다녔다. 요즘은 집 근처 투썸 플레이스에 온다. 넓직하고 천장이 높다. 대창이라 볕이 쏟아진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수 시간을 죽치며 폐를 끼친다. 언제고, 어떤 식으로든 이 은혜를 갚아드리고 싶다.
한국은 공간 보다 집이다. 집에 대한 애착이 어마어마하다. 젊은 사람들은 덜 한다지만 결혼이나 독립에 집은 필수일밖에 없다. 종종 이 나라는 집값이 지탱한다는 말이 나온다.
유럽이나 호주 같은 나라는 집밖 공간에 치중한다. 좋은 공원이나 광장,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풍경이 눈에 익다. 집은 2순위. 평수도 크지 않은 공간에서 간명하게 살다 바깥 넓고 풍요로운 공간에서 사색하고 만끽한다.
녹지비율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연구가 있다. 공원과 더불어 여느 미술관 못지 않게 조성된 공공도서관이 있다. 공간에의 착상은 쾌적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세상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축에 드는 한국에서, 공간은 공공재가 아닌 사적 축재의 준비처이다. 평당 얼마라는 공식과 잣대가 전 국토를 지배한다. 녹지 많고 틈이 많이 벌어지거나 비어 있는 공간은 낭비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산에 집착하는 이유도 어쩌면 공간에 대한 결핍에서 오지 않을까. 그마저도 낭비처럼 느꼈는가 통치하는 사람들은 산이 그저 서 있는 양이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위락시설을 개발할 수 있게 관련 규제를 철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강에 이어 산마저 놔두지 않는다. 놔둘 리 없다.
넓은 평수와 높은 지대를 위해 공간은 틈을 좁혔고 허공은 차올라갔다. 사람들의 욕망이 정권의 이해와 맞물려 개발로 밀고 왔던 게 이 나라 역사의 숨은 곡절이다.
용산 미군기지를 공원화 한다는 방침을 두고 격렬한 반발이 일었다. 남일당에서 여섯 사람이 죽은지 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신문 광고 지면의 제일 비싼 곳은 건설회사의 분양 광고가 차지한다. 마곡 지구의 개발, 세종시의 모래바람, 문정•장지동의 크레인...
우리는 언제쯤 공간을 사유하고 빈 터를 누리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