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 길러내기

그러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by 홍하영

앞서 하우어워스는 기독교 윤리의 독특성을 확보하고자 시도했습니다. 이제 그는 기독교 윤리가 어떠한 독특한 방식으로 형성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1. 교회로 살아가는 방식 훈련하기

​하우어워스에 따르면 윤리적 과제란 옳고 그른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훈련하는”데 있어요. 하우어워스는 ‘옳고 그른 것을 가르치는 것’과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구분해내고 있는데, 과연 이 두 가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제가 한 번 쉽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지금 하우어워스는 현대 윤리를 지배하고 있는 칸트 윤리와 기독교 윤리를 대조시키고 있어요. 칸트에 따르면 윤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보편적인 도덕 법칙(정언명령)을 내 이성이 찾아내고, 그것을 따르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윤리적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 옳은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판단력과 의지가 핵심이라고 칸트는 보고 있는 거죠.


그런데 하우어워스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하우어워스가 보기에 우리가 윤리적이지 못하는 이유는 옳은 것을 구분해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비뚤어지게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윤리적 과제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렌즈로 세상을 ‘제대로 보는 법(비전)'을 익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서열을 다투는 제자들 사이에 어린아이를 세우고 축복하십니다. 당시 어림 아이는 의존적이고 연약한 존재로 이해되어 왔어요. 그런 아이를 모임 중심에 세우고 축복하는 행위는 당시 세계관 내에서 급진적이고 반문화적 사건이었습니다.


교회도 예수께서 보이신 모습과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훈련됩니다. 겉보기에는 하찮은 방식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수단을 만들어내는 것이 기독교 윤리의 훈련 방법이에요.


하우어워스에 따르면 도덕적 성품을 습득하는 일은 마치 언어를 배우는 일과 유사합니다. 우리는 언어를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따라 하며 배우죠. 마찬가지로 도덕적 성품 역시 특정한 행위를 보고 따라 하는 것으로 배워집니다. 즉 윤리는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서 하나 되어 사는 방식에 의해서 좌우된다.”라고 할 수 있죠.




2. 비합리적인 듯 보이는. 그러나

이처럼 현대인들의 윤리가 합리성을 추구하는데 반해 기독교 윤리는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광신적인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죠.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 순종하고자, 합리성과 독립과 선함과 같은 개인적인 주장들을 포기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의 이야기를 전제로 삼는 윤리이기에 하나님의 존재가 의문시된다면, 기독교 윤리가 주장하는 모든 것들은 어리석은 것이 될 겁니다.


그러나 하우어워스는 그리스도인 독자들을 향해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하시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셔서 세상을 다스리신다면, 그때 우리는 비로소 (합리적인 세상의 눈에는)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것 속에서도 참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요.



3. 기독교 윤리의 목표 : 평범한 사람

이러한 면에서 기독교 윤리는 잠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요. 현대 윤리에 익숙한 21세기 사람들이 기독교 윤리에 쉽게 동조하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입니다.


기독교 윤리 역시 세상에 대해서 자신의 전통이 모두에게 설득할만한 것이라는 억지 주장을 펼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단지 이 전통이 진리에서 온 것임을 주장”할 뿐이죠.


하우어워스에 따르면 기독교 신앙이 전제하는 진리는 경험한 사람들만이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 윤리는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배워서 알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이유에서 하우어워스는 교회 안에 기독교 윤리가 훈련되기 위해서는 진리를 경험하게끔 하는 일반적인 사례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요.

기독교 윤리가 얻고자 하는 사람은 바로 이런 사람, 다른 평범한 사람들 앞에서 기독교적인 삶을 살아 내는 평범한 사람이다.

하우어워스의 논의를 따라온 사람들이라면 그가 말하는 평범한 사람이란, 말처럼 쉽게 가능한 것이 아닌 듯싶습니다. 그가 말하는 '평범함'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세를 따르는 삶'과는 정반대의 지점에 서 있기 때문이에요.


하우어워스에게 평범한 삶이란 단순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기독교 윤리가 길러내는 도덕적 성품이 몸에 밴 상태를 의미합니다. 때로는 가혹할 정도의 제자도를 요구하는 모델이죠.


평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라는 공동체의 이야기 안에서, 제자도 훈련과 공동체의 지지가 필요합니다. 끊임없이 우리에게 이기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이 되라고 유혹하는 세상에 저항하는 힘을 가진 존재로 거듭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우어워스가 말하는 평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선 기독교 신앙의 훈련이 길러내는 비범함을 필요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