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는 모험이다
하우어워스는 기독교 윤리가 어떻게 도덕적 성품을 형성하는지를 설명한 후에, 목회자들이 이러한 윤리 형성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지에 관해서 이야기합니다.
하우어워스에 따르면 오늘날 목회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교회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오늘날 성직자들이 겪는 문제는 인성의 문제가 아니라, 성도들에게 교회의 방향을 제시해주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오늘날 신학교는 “문화의 모든 부문에 정통한 사람”, 즉 “세상에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을 배출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파송된 신학생들은 교회 안에서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지위에 만족하며, 성도들의 입맛에 맞추려 시도합니다. 그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얻어내는 것에 마으을 두고 노력하죠.
그러나 하우어워스에 따르면 이러한 모습은 사역자들에게 교회가 어떤 곳인지에 대한 고민이 부재하다는 것을 드러내줄 뿐입니다. 그는 교회에 대한 고민이 부재할 때 목회자들은 교회에서 자신이 어떠한 일을 해야하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면서 목회자에게 필요한 것은 교회가 어떤 곳인지, 즉 교회의 목적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사도행전 본문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내려진 베드로의 판결과 결말을 하나의 예시로 듭니다. 이야기 속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신들의 소유를 판 재산을 일부만 남기고 교회에 헌금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그들의 잘못을 꾸짖고, 하나님은 그들의 생명을 앗아가십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독자들에게 다소 반감을 사는 부분이 있습니다. 본문 속에서 베드로와 하나님의 성품이 다소 매정한 것처럼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특히 다른 회중들 앞에서 성도를 호되게 꾸짖는 베드로의 행동은 오늘날 우리가 좋다고 말하는 목회자상과는 반대되어보입니다.
그러나 하우어워스에 따르면 베드로의 행동은 교회의 목적과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조명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우정으로 얽힌 패거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급진적인 비전을 이루어가도록 세워진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성공적으로 열어주는 곳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책임을 지고 행동해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엄밀함이 갖춰지지 않은 교회는 기독교 전통이 길러내는 도덕적 성품을 지닌 인간을 형성할 수 없을 뿐더러, 세상의 방식에 대한 대안으로 자리할 수 없습니다.
하우어워스에 따르면 오늘날 교회는 자신들의 목적과 역할에 대해 무관심합니다. 그가 볼 때 오늘날 목회자들은 회중들의 입맛에 맞는 교회에 더 관심하고 있어요. 그러나 이 사안에 관하여 하우어워스는 분명히 말합니다. 교회는 자신의 목적과 역할에 부합하는 모습을 이룰 때 비로소 하나님의 백성다워진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