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된 교회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우어워스는 교회를 나그네라고 정의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보다 교회 됨을 이루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세상과 구별된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 가슴 뜨거워지는 일입니다. 세상과 구별된 방식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기쁨의 여정이 될 테니까요.
하지만 주어진 현실 속에서 나그네라는 교회의 입지는 다소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나그네는 환영받지 못하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세상 속 아웃사이더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없고, 늘 불안함 가운데 살아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에 하우어워스는 우리가 불안할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비록 우리가 이 세상에서는 집 없는 ‘나그네’로 존재하지만, ‘집’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거든요. 우리의 집은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하우어워스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들입니다. 또한 그런 우리가 아무런 이유 없이 세상에 보내져서 나그네로 살게 된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분명한 목적에 의해 세상에 보내졌습니다.
우리, 즉 교회는 세상을 하나님 나라의 식민지로 삼기 위해 존재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목적입니다. 어딘가로부터 쫓겨나거나, 집이 없어서 나그네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파견, 하나님 나라로부터 세상으로 파견된 것이 교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식민지라는 어감이 주는 부정적인 인상이 있죠.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식민지는 세상이 식민지를 삼는 폭력적인 방식과는 명백하게 구분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식민지는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삶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세상에 현혹된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맛 보여주면서 하나님 나라로 그들을 초대하는 겁니다.
그런 면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도구로서 역할을 다 하는 것이야말로 교회다워지는 것이죠.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고 심판하시는 데 사용되는 핵심 수단”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하우어워스의 구원에 대한 독특한 이해가 드러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구원은 개인의 결단과 회심과 연결되어 이해됩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하고, 돌이키는 것이 곧 구원이에요.
하지만 하우어워스에게 구원이란 개인을 넘어 공동체와 관련되어 있어요. 하우어워스에게 구원이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예수 안에서 창조하신 새 백성의 사역에 동참하라는 초청”입니다. 즉, 구원은 교회로 부름 받은 이들이 함께 모여 교회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우어워스는 대체 왜 구원을 교회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해할까요? 꼭 교회여야만 하는 것일까요? 이렇게만 본다면 하우어워스의 주장은 일부 배타적인 성격을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하우어워스의 주장의 독특한 면모가 드러나는 부분이에요.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하우어워스에 따르면 인간의 삶은 조각난 상태로 존재합니다.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우리는 삶의 경험을 통해 다양한 악과 고통, 우리의 연약함과 한계, 죄와 시험들을 경험합니다. 인간의 삶은 혼란한 상태 속에 있습니다.
하우어워스는 이러한 인간 스스로가 새로운 삶을 살아내기란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어떤 수단으로도 세상의 방식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해도 결국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죠.
하우어워스에 따르면 인간의 조각난 삶을 회복하는 길은 하나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말씀은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님을 깨닫게 해 줍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세상이라는 식민지에 있고, 세상의 익숙한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으로 모험을 떠나야 하는 나그네들임을 인식하게 됩니다.
조각난 삶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게 될 때 무의미하던 삶에 의미가 부여되고,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이유 역시 바로 이것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달되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 이야기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어요. 하우어워스에 따르면 이야기는 반드시 이야기 공동체에 안에서 몸으로 살아낼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습니다. 혼자서는 실천하기 어렵고 망각하기 쉬운 이야기를 공동체를 통해 상기시키고 전유하는 것이죠.
하우어워스에 따르면, 이스라엘 공동체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모인 백성이에요(신 6:21-23).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점차 파악해갈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각자 다른 곳에서 이야기를 살아낸 것이 아니라, 공동체로 모인 삶을 통해 하나님의 선물로 이해하는 방식을 터득해 나갔어요.
하우어워스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교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전달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 모두는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인 동시에 들려주는 사람인 것이죠.
교회 공동체 안에서 듣게 되는 이야기들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성서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셨고 또 이스라엘과 교회 속에서 계속 이어지는 그 이야기’의 일부가 됩니다.
이스라엘부터 교회까지 이어지는 이 이야기에 참여한다는 것은 세상과 대척점에 서는 일이고, 험난함이 예상되는 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이라는 멋진 자격과 그 위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실현해 나갈 수 있는 기쁨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지점에 서 계신가요? 주저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모험을 떠날 준비를 하고 계신가요. 아니면 기쁨의 여정에 동참하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