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서 하는 생각들-
주룩주룩 비가 오는 날이 계속되고 있다.
비는 혼자 내리지 않는다. 동해안 끄트머리 이 동네는 비가 오면 바람도 항상 거세다.
이 많은 비를 텃밭 채소들이 버텨낼까?
아직 솎아내지 못한 당근들이 많은 비 탓에 썩어버리는 건 아닐까?
이 거센 바람을 부쩍 자란 옥수수들이 버텨낼까?
이 비가 그치면, 잡초들은 또 얼마나 자라 있을까?
비는 바람만 데려오는 게 아니다, 초보 농사꾼의 마음에 근심도 한 자락 가져온다.
모처럼 비가 그친 토요일 오후에 아이들과 텃밭에 다녀왔다.
오래간만에 간 텃밭은 완전한 풀천지, 잡초 세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솔직히 심어놓고도 뭔지 모르는 게 많은데, 잡초들까지 무성하니,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가 있나.
무조건 잡초는 자르거나 뽑기로 하고, 아이들의 손에도 가위를 들려주었다.
싹둑싹둑, 뽁뽁... 시간이 좀 지나자 그제야 잡초와 채소의 구분이 가능해졌고,
역시나 홍수 같은 비 벼락 속에서 버텨낸 건, 잡초요. 썩어가는 건 채소였다.
잡초도 같이 기르기로 했던 초심 따위는 이젠 없다.
잡초와의 전쟁이다.
뽑고, 자르고, 덮자!!!
혼자서는 씩씩하게 못 자라는 채소들...
잡초들에 비해 너무 많은 잎사귀를 달아야 하는 잎채소들
너무 많은 열매를 매달아야 하는 토마토와 방울토마토.
너무 무거운 열매를 매달아야 하는 호박이나 오이.
너무 빨리 자라는 옥수수.
야생에서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단지, 내가 아는 건 많은 연구와 개량 끝에 우리가 먹기 좋은 맛과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약하다는 것뿐.
새삼스럽다. 텃밭의 고비가 지금인 것 같다.
이 채소들을 여름의 장마와 땡볕에서 지켜내기 위해 해야 할 수고를 생각하니, 다가올 수확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