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의 물결(1) - 한 숨

by 혜성
[한 숨] 오일 파스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바람이 부는 것에도, 파도가 치는 것에도, 휘청이는 것에도.
그러나 내가 휘청이게 만드는 것에는 이유가 없었다.
그 이유 없는 물결은 나를 자꾸만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게 만들었다.


내가 사회에 처음 발을 들였던 때는 24살이었다. 그렇게 입사한 작은 스타트업의 직원들은 내 또래의 선배들이었다. 덕분에 모두들 서로 어렵지 않게 친해졌고, 퇴근 후에도 종종 자리를 같이 하기도 했다. 무난한 성격의 사람들이었다.

학창 시절 흔하게 겪는다는 따돌림도 받아본 적 없는 나는, 어쩌면 너무나도 무난한 삶을 살던 사람이었다. 내향적인 부분이 많았기에 활발한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성향은 아니지만, 모나지 않고 둥글게 살던 사람이었다.


그런 나에게 맹목적인 미움을 퍼부어주는 사람이 다가왔다. 그녀는 그 스타트업의 대표였고, 나의 첫 면접을 본 면접관이기도 했다. 그녀는 나를 처음부터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고, 매번 내가 하는 것에 칭찬을 아끼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잔잔하던 수면에는 거친 물결이 쳤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나에게 잘해주던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나의 행동과 말투, 모든 것을 싫어하기 시작했다. 그저 나를 계속해서 미워할 뿐이었다. 내가 어떤 실수를 해서도, 특이하게 행동해서도 아니었다. 함께 하던 사람들은 그녀의 뒤에서만 나를 위로해 주었고, 아무도 나서서 도와주지 못했다. 그저 그녀의 눈치를 보기만 바빴다. 매번 그녀가 소리를 치면 나는 그것을 묵묵히 받아냈다. 나의 매일은 그 미움을 그저 모두 받아내야 끝나는 하루가 되었다.


그 나이 때에는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이 실패를 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허우적거렸다. 점점 나는 가라앉았다. 숨을 쉬러 이제 그만 물 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러면 막혀오는 숨을 깔딱이며, 나 자신을 자꾸만 더 괴롭혔다. 이런 괴로움은 몸을 망가뜨렸고, 나는 매주마다 응급실에 가는 처지가 되었다. 결국은 내가 그토록 겁내던 그 '포기'라는 깊은 파랑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또 실패했다.'


그런 마음에, 나는 나를 병들게 하던 그곳과 그 사람을 벗어나서도 여전히 아팠다. 물 밖으로 나왔지만, 마음은 바닷속 깊은 곳의 무언가를 붙잡고 있었다. 그래서 자꾸만 되돌아보았다. 그것은 내 꿈이었을까, 후회였을까.

파랑의 물결은 다시 평온한 예전으로 돌아갔지만, 나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털고 일어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도 해보고, 책도 읽었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접한 것 중 마음에 와닿던 문장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해녀들의 숨에 관한 이야기이다.

해녀들은 물질을 할 때 반드시 명심해야 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숨의 길이'다. 물질의 성패와 보수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숨이다. 얼마큼 버틸 수 있는지는 오직 본인만이 안다. 그 한 숨이 남은 인생보다 소중할 수 없기에, 해녀는 매번 포기하고 돌아가는 법을 연습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포기를 했다고 해서 그 물질이 실패한 건 아니다.


그렇게 한 숨의 길이를 알게 된 나는, 매번 수면 위로 올라올 타이밍을 조금씩 배워간다.

두고 온다고 해서 그것이 포기는 아니고, 포기한다고 해서 실패하는 건 아니다.

살아가며 끝없이 많은 물결을 마주하겠지만, 나는 실패하지 않고 더 깊고 푸른 바다를 찾아가려 한다.



#에세이 #감성에세이 #파랑 #파랑의물결 #포기 #실패 #극복 #청춘 #감정 #디자이너 #10대 #20대 #30대 #성장 #직장인





이전 06화2. 어둠 속에서 비로소 바라볼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