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_시간을 건너 도착한 마음

by 혜성
주말 오후, 커피잔을 앞에 두고 나도 모르게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얼굴이 하나 기억났다.
그녀는 말했다. “네가 30대가 되면 이해할 수 있을 거야. “

대학을 갓 졸업한 24살의 나는, 진로에 대한 고민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여러 회사를 옮겨 다녔다. 그래서인지 나이에 비해 이직을 여러 번 겪었고, 여러 회사와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했다. 퇴근 후 편한 술자리에서 회사 선배들은 막내였던 나에게 이런저런 말들을 많이 해주었다. 그들의 나이는 30대 초중반, 지금 현재의 내 나이였다. 나의 20대는 꽤 당차고 할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성격이었다. 좋게 말하면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젊음만 믿고 당돌하게 구는 어린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지금의 나 역시도 그때의 모습을 떠올리면, 아직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할 정도니 말이다.


진로에 고민이 많던 그때의 나는 30대가 되면 어떨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30대의 회사 선배들에게 틈만 나면 이런저런 질문들을 많이 했다. 그중에서 나는 가장 궁금한 것이 ‘그들은 지금의 삶에 만족할까?’ 하는 것이었다. 아마 어린 마음에 지금의 나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많은 이직과 도전을 하고 있지만, 막연하게 30대가 되면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생각보다 오래 뜸을 들인 뒤, 난처한 웃음과 함께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늘 담담하게 나의 질문에 대답해 주던 선배들이었지만, 그 질문에는 유독 난처한 얼굴빛을 비췄다. 나는 “그럼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꾸면 되잖아요?”라는 물음을 던졌다. 선배는 “그 말도 맞는 말이지. 하지만, 30대가 되고 나면 무언가를 바꾼다는 게 쉽지 않게 느껴지더라고..”라는 답을 주었다. 나는 그들의 변명 아닌 변명에 살짝 실망했다. ’저 사람들은 그저 변화가 무서운 게 아닐까?‘ 하며 혼자 생각했다. 이런 내 속마음이 들킨 건지, “음,, 네가 30대가 되면 이해할 수 있을 거야.” 한참을 조용히 생각하며 맥주를 홀짝이던 그녀가 내게 슬며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느덧 8년이 흘렀다. 그렇게 나는 나의 질문에 난처해하던 그녀의 나이가 되었다. 여러 회사를 전전하며 다니던 나는 지금 현재 안정적인 회사에 정착했다. 하지만, 이직을 고민하는 마음은 매일 잔잔하게 요동친다. 안정적이지만 미래가 없어 보이는 회사와 나의 5-6년 뒤 미래를 마주하는 것 같은 상사들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이직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 하지만 나는 매번 망설이기만 한다. 20대에는 가능성을 봤다면, 30대에는 감당해야 할 책임과 실패의 결과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이제 그게 무엇이든 ‘도전’보다는 ‘유지’의 문제가 더욱 크게 와닿게 되었다.


8년 전, 맥주를 마시던 선배들이 나의 질문에 대해 고민했던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만족하는 삶’ 이란 것이 얼마나 추상적이고 어려운 말인가. 아마 지금의 내가 그 질문을 받는다면, 나 역시도 그녀와 똑같이 그저 조용히 웃으며 말을 아끼지 않았을까.

이 현실이 만족스럽다 당당하게 말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어린 친구에게 현실을 설명해 주기도 난처했을 것 같다. 어쩌면 너의 다가 올 30대는 나와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주저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너의 30대에 그 답을 알 수 있을 거야.’라는 대답이 진짜 정답이 아니었을까. 8년이 흐르고 난 지금, 나는 그녀의 현명함에 고마운 감정을 느낀다. 나는 그들과 다를 거라 생각했던 그 패기 넘치는 오만함이 저절로 부끄러워졌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던 20대에 나는 유독 그녀 말고도 ”나중에 때가 되면 알게 될 거야. “ 하는 등의 말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철없던 20대의 어린 친구에게 자신의 한정된 경험 만으로 쉽사리 가르치려 들고 싶지 않았던 그들의 배려는 아니었을까. 어쩌면 정해진 답 대신 너에게는 다른 30대가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이었지 않았을까.


그들의 말에 담겨있던 마음은, 시간의 차이를 건너 이제야 나에게 전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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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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