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_나에게 오는 길

by 혜성
초등학생 시절, 책상과 책상 사이 거리를 띄워 ‘여기 선 넘어오면 죽는다~!’ 하며 짝꿍에게 협박을 해본 경험은 다들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짝꿍과 ‘넘어오면 내꺼’ 라며 물건을 빼앗아보기도, 괜히 꼬집거나 주먹질한 적도 있다.

성인이 되어 한참이 지난 지금도 나는 내 곁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선을 긋고 있다. 누군가는 나의 당당하고 독립적인 모습이 멋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내게 다가가기 어렵고 벽이 느껴진다 말했다. 그래서인지 내게는 오랜 기간 곁을 지켜준 소수의 인연들이 있지만, 한편으로 새로운 인연들은 다가오기 힘들어하기도 한다.


어딘가에서 지나가며 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처음부터 독립적인 성향의 사람은 없다. 그 이도 어렸을 때, 다른 이들과 똑같이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기대려 했던 사람일 수 있다. 하지만 반복되는 상처와 사람에 대한 실망으로 어느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게 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타인으로부터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우연히 눈길이 갔던 글이었는데, 그 내용이 내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독립적인 모습이 상처에 대한 방어기제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물론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의지하고 싶었던 때에, 기댈 수 없거나 상처를 받았던 경험은 있다. 하지만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관계에서 크고 작은 기대와 좌절을 겪는다. 나는 그 가운데서 나만의 방식으로 타인과 거리를 두기로 선택했다.


어렸을 적 책상에 선을 긋던 아이는 생각한다. ‘내 공간에 네가, 너의 물건이 들어왔으니까 그것은 내 맘대로 해야겠어!’ 나의 공간이라는 것은 결국 나의 마음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아이는 자라나서 나의 마음으로 다가오는 길에도 선을 긋는다. 하지만 어렸을 적 그었던 단순한 직선이 아닌, 조금 더 어려운 선을 그어보기로 한다.


선을 그을 때는 가장 바깥의 공간에서 나에게 점점 가까워지는 회오리 모양의 선으로 긋는다. 그 선을 따라 머무르는 사람은 언제든 되돌아 나갈 수 있고, 내게 더 다가올 수도 있고, 중간쯤에서 적절한 거리를 두고 머무를 수도 있다. 어쩌면 선의 끝과 끝으로 마무리되는 도형이 아닌, 하나의 곡선은 가능성이 많은 경계가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그리고 그 회오리 모양의 곡선 끝에는 내가 있다.


‘회오리 모양이라니, 너무 어렵지 않은가?’


나 역시도 관계에 대해 단순히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마음은 단순하지 못해서 늘 빠르게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관계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런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는 쪽은 항상 나였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관계의 선은 조금은 유연하고, 조금은 복잡하고, 조금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서히 곁을 내어줄 수 있는 모양이 되었다.


나에게 다가오는 길이 조금은 멀고 오래 걸리더라도, 꾹 참고 다가와 준 사람에게는 한 없이 마음을 준다. 그리고 그 관계가 아무리 소중하다 하더라도, 언제든 내게 등을 보이며 그 곡선을 따라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열어둔다. 오히려 그런 마음가짐이 나를 나답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그 덕분에 내가 타인의 입장에서는 독립적으로 비춰지는게 아닐까 한다.


그렇게 어렵고 오래 걸리는 길 끝에 나에게 다가와 준 사람을 나는 기억한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 관계에 대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대가 먼저 떠나가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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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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