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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새글 Apr 29. 2021

'적당한' 어느 날, 갑자기

이름도 아껴두고 싶은 나의 친구에게

  너에게 말을 건네기 전에, 우선 이 말부터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이 곳에 꽤 오래 들르지 않았다. 사는 게 바빠서, 글 말고 쓸 게 많아져서. 머리도, 마음도, 몸도. 다 맞는 말이다. 정확히는, '적당히' 맞는 말이다. 나는 글을 적당하게, 아니 적당하기 위해 써 왔던 것 같다고 문득 느꼈어.


   응, 네가 다정하게 방금의 내 말을 부정하는 모습이 어렵지 않게 그려진다. 적당하게, 라는 단어가 정확한 것인지는 사실 가늠이 안 된다. 어쨌거나 글을 쓰려고 나는 대학원까지 왔다. 눌어붙은 밥알처럼 이부자리에 퍼져 있다가, 일하거나 공부하는 짬짬이 달아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카페에서 친구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면서도 한 손으로, 마음 한 켠으로 쓸 수도 있는 것이 글이 아닌가? 사실 무언가를 위한 글이 아닌, 오롯이 글을 위한 글을 쓰기 위해 시간과 돈을 바친다는 것은 좀 이상하다. 뭐랄까... 경제적이지가 않잖아. 재밌는 건 대학원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그걸 알고 있단 말이지. 그런데도 왔고, 읽고, 쓰고, 산다.


  '적당히'를 모르는 채로.


  좀 적당히 해. 적당히 써. 작작 해라. 왜 그렇게까지 진심이야?  


  이 말들의 편에 서서, 중도를 아는 사람이라고 자부했던 나는, 지금 생각해 보면 되게 오만했던 것 같다. 글은 나를 괜찮아 보이게 하니까, 조금도 적당할 수 없는, 혹은 그러고 싶지 않은 순간의 나를 무마해 줬다.


  너는 그래도 적당한 편이지.


내가 실제로 들었고 그래서 기뻤던 누군가의 말.


사실 지금도 싫지 않아. 나는 아침나절 지옥철을 오가는 직장인이고, 정말 어울리지 않게 IT기업에서 일하고 있어. 나는 지금 글 없이도 적당한 사람이 아닐까?그렇게 보이려고 정말 애를 쓰고 있으니까, 조금쯤은 그렇게 보여야 공평하다고 생각해. 터무니없는 바람은 아닐 거라고 믿고 있다.


  내 극단과 비정상과 모순을 오롯이 글 쓰는 나한테 흙먼지처럼 내버려 왔기 때문에. 글 쓰지 않는 나한테 그게 아직도 묻어 있으면 좀 곤란하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적당한 사람이다. ...그런가?


  아니다. 사실 나는 적당하지 않고, 그런 나를 미워하면서도 사랑하기 때문에 절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찌꺼기를 마음 한편에 차곡차곡 모으면서 살고 있다. 그곳은 내 매립지, 쓰레기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내 자아는 거기서 무럭무럭 자라나서 한 가지는 대학원에, 다른 가지는 회사에, 또 다른 가지는 집에, 아무튼 여기저기 물색없이 드리우고 있다. 떨어져 내릴 듯 바스락거리는 덧없는 일부를 여기저기 뻗은 채, 어쨌거나 나는 살아 있다. 그곳이 있기 때문이다. 실은 적당함과는 한참 먼 거리를 향해 점점 비대하고 무거워지는 나, 어느 일부는 나와 함께 자랐기에 무엇이 너를 진정 행복하게 하냐고 응원하듯이 묻는 너, 그리고 적당하건 말건 조금도 개의치 않는 사람들이 있는 그곳. 빤하고 상냥하고 적나라하고 편안하다. 숨길 필요가 없다. 가끔 숨겨도, 그러다 들켜도 괜찮다. 이곳의 화폐는 진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사실 그렇다고 해도 가난한 건 마찬가지지만, 최소한 벌이 정도는 기껍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이제 너의 이야기가 나올 차례다. 내가 왜 오늘 갑자기 너한테 네 글이 읽고 싶다고, 네 문장이 그립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한 이야기의 기나긴 서두였다. 지금까지 쓴 글을 읽으며 한숨을 돌린다. 나는 왜 너처럼은 쓸 수 없지 하며 아쉬워한다. 내가 묻은 건 네가 묻은 거랑 다르니까 어쩔 수 없지, 홀로 위안을 삼는다. 생각해 보면 너는 내가 이 쓰레기를 거름 삼아 나무를 키우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네가 그렇게 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내가 추하기 그지없는 진짜배기 속내를 쓰레기아니라 같은 거로 여기게 된 건 네 공 클 것이다. 껏 갖다 붙이는 게 철지난 텃밭이라니... 다분히 사은유적인 느낌이긴 하지만.


  나는 네가 네 밭에 주는 거름에 관해 생각한다. 네가 너의 가장 추하고 초라한 순간을 고백할 때조차 나는 당혹스러웠다. 그것이 내 적당한 상식과 경험을 미루어 추하고 초라하게 보여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서다. 너는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던 것 같다. 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한없이 낮은 곳에 가라앉아 있는 진심에 가까이 도달한 것 같다고 느껴서다. 마음의 가장 낮은 어둡고 편한 곳에 웅크리려는 너 자신의 멱살을 잡고 끌어올리는 자기 추적의 몸부림. 단 일말의 모순조차 너는 끝없이 회의한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얼나 거듭 고통을 거쳐야 비로소 그것을 일상이라는 울타리에 방임할 수 있는지, 나는 감히 상상은 할 수 있다. 건방지게 나도 어느 정도는 노력 중이라고 말해 본다. 하지만 기꺼이 할 수 있다고는 감히라도 말할 수 없다. 이 글에서조차도 말이다.


  너는 내 그리움에 고마워하 네가 쓴 글을 보내줬다. 특유의 너, 특유의 네 문장, 그런 너로 구성된 나의 텍스트를 향한 나의 이 그리움은 엄밀히는 너를 담고 있고 또 닮고 싶은 내 밭을 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감사를 들을 생각으로 한 말이 아니지만, 그저 견딜 수 없어서 배설해 버린 자기고백이지만, 그것이 감사의 모양새를 한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한참 뒤에야 회에 뻗은 무수한 가지 중 하나가 속삭인다. 더 한참 뒤에는 이 그리움과 감사의 환이 어쩌면 불가항적인 거라고 생각한다.


  내 밭은 네 밭을 닮았을 테니까.


  너는 이미 내 마음에 공명하고 있었으리라 함부로 생각해버린다.


  함부로 생각한 김에 더 얘기하자면, 네 글을 보고 사실 나는 바로 울었다. 너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진실한 마음을 품격 있는 문장에 싣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너는 어떻게 그것을 매번 해낼 수 있는지.


  내 감사가 배설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리고 적당한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여기에 널 닮은 글 한 편을 다시 써 보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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