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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Feb 20. 2019

짐승의 기도 <사바하>

스포일러를 포함함


최근 한국 영화계에 불고 있는 오컬트 붐은 꽤나 반가운 징후다. 근 10여 년간 대세의 자리에 집권했던 범죄 스릴러, 실화 기반 역사극의 탈을 쓴 정치 포르노물들은 이제 슬슬 레임덕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필요 이상의 무게를 잡고 신파를 섞어 관객을 계몽 시키려들었던 한국영화들에 대한 관객들의 환멸은 <극한직업>의 폭발적인 흥행이 반증한다.


<사바하>는 한국 영화 오컬트 붐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영화라 보긴 힘들지만 사천왕 정도의 여력은 보여줄 수 있는 영화다. 아무래도 이 오컬트 붐의 중심엔 <곡성>이 설 수밖에 없다. <곡성>은 최소한 한국 오컬트 장르에선 ‘열반’의 경지에 오른 영화이기 때문이다. 장르적으로 보나 소재로 보나 <사바하>는 여러 지점에서 <곡성>과의 오버랩을 피하기 힘들다. 당연하게도 <곡성>이 오른 경지에는 현저하게 미치지 못하지만 특유의 몰입감, 캐릭터의 신비감을 표현하는 부분에선 탁월하다. 말이 나온 김에 두 영화를 비교해보자면 <곡성>은 감독이 의도적으로 구멍을 뚫어 놓고 시작하는 영화, <사바하>는 감독의 역량 부족으로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는 영화다.



그 구멍들이 뚫린 원인은 지나치게 편의적인 캐릭터 구성과 우연에 의존한 플롯 전개에 있다. 일반인인 박 목사가 접근하기 힘든 정보를 얻기 위해 친누나를 경찰 간부로 설정해놨다는 점, 박 목사의 후배인 해안 스님이 중앙 불교계에서 티벳 대승을 보필할 정도의 거물이라는 점, 정진영이라는 이름 있는 배우를 캐스팅해놓고도 경찰들이 관객들에게 일부 사건현장을 중계하고 박 목사에게 정보를 흘리기 위해 단순 소비되었다는 점 등이 감독의 캐릭터 구성력의 한계를 보여준다. 특히 금화의 조부모들은 금화가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길 원하게 만드는 결정적 원인을 제공하는 중요 인물들인데 중반부 이후부터는 그들의 존재가 어이없게 사라져 버린다. 또한 오직 반전을 위해 넣은 110살이 넘는 김제석의 제자 설정, 배에 산탄총을 맞은 정나한이 후반부 말도 안 되는 활약을 하는 부분 등은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 너무 안일하고 편한 선택을 한 결과다.


이런 선명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사바하>는 장점 역시 두드러지는 영화다. 장재현 감독은 오컬트 영화를 연속으로 연출한 감독답게 각종 종교 지식들을 영화 속에 촘촘히 박아놔 영화에 현실감을 부여하고 있다(고증이 잘 되었나는 모르겠다). 이 현실감은 영화의 긴장감 고조로 연결되는데 초반부에 박 목사와 고요셉이 종교단체에 잠입해 정보를 캐내는 장면, 박 목사가 중앙 불교계 간부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 등은 묘한 신비감과 긴장감을 유발한다. 영화 후반부는 전반부에 비해 맥이 빠지지만 교서의 숫자에 대한 비밀, ‘그것’의 충격적인 디자인은 중반 이후 빠졌던 몰입감을 다시 한번 충천하는 역할을 한다.



<사바하>의 또 다른 인상적인 부분은 박 목사라는 캐릭터의 정체성이다. 목사라는 지위가 무색하게 “진짜(신)가 존재하긴 하는 걸까?”라는 의문을 계속해 되뇌는 이 캐릭터는 영화의 주제이자 시선 그 자체다. 박 목사의 의문은 후에 마태복음 2장 16절(예수가 태어날 시기에 헤롯 왕이 예수를 죽이기 위해 2세 이하 남자아이들을 대학살 했다는 잔혹사)을 스스로 언급하며 ‘신의 존재 유무’에 대한 의문이 ‘신이 존재한다면 과연 선한 존재일까?’의 의문으로 넘어간다. 여기에 ‘악은 존재하지 않고 선과 악이 늘 변할 뿐’이라는 불교적 관점이 더해져 박 목사의 정체성과 <사바하> 속 세계관을 정립시킨다. 박 목사는 결국 모든 걸 알면서도 성경 속 갓난아기들의 대학살처럼 현실의 희생자들을 구해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예수를 찾으며 기도한다. "하느님 어디 계시나이까, 부디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진짜'들의 싸움으로 생긴 수많은 희생을 직접 지켜보고서도 본 적도, 믿기도 힘든 '예수'를 향해 올리는 기도는 인간이란 존재가 얼마나 무기력하고 나약한 존재인지 보여준다. 종교에 귀의해 모든 걸 바치고 희생한 정나한이 최후의 순간에 남긴 말은 결국 "춥다"라는 말이었다. 엔딩씬에서 밤하늘에 나래이션으로 울리는 박 목사의 마지막 기도는 기도라기보다 어린양의 마지막 울분이며 소심한 신성모독으로 들린다. 자신의 세계인 사바세계에서 조차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방관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어린양의 기도는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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